다이내믹 명상은 하나의 장치이자 정밀하게 고안되었으며 가능한 모든 측면을 고려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명상법은 어떤 경우라도 수행자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 관조 즉 지켜봄이 명상의 본질이다.
25. 3. 18 am 5:30
오쇼 다이내믹 명상 1일 차
발바닥이 뜨거워진 느낌이 좋다
발이 꾹 바닥을 딛고 선 낯선 느낌.
현실에 발을 딛고 서야 해, 라는 은유의 말이 실체가 되어 나타난 느낌.
우주가 나구나 알아챈 순간도 있었다. 감각 전체가 열리고 에너지가 순조롭게 순환하는 듯할 때, 아 이것이 우주인가.!
머리는 계속 돌고 말을 걸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게 맞아? 이건 어떤 의미가 있어?
날숨에 집중해 숨을 뱉으면 콧물도 같이 터지는데 이 콧물을 닦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입을 다물고 날숨을 강조하는데 집중하면 목이 컥컥 아프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탯줄에 의지해 입을 오물고 숨을 쿰쿰 내쉰 태어난 날의 고통, 아들 낳은 날의 고통과 환희가 겹쳐지는 환상이 체험되는 듯도 했다. 생각인지 느낌인지 모르겠을 때 오열아 터졌다. 몸의 반응. 이렇게 크게 오열해 본 적이 없어서... 놀라고 시원했다.
3/19 AM 5:33
오쇼 다이나믹 명상 2일 차
어제보다 몸이 무거워서 엉거주춤하게 시작.
매트리스를 크게 두드리면서 소리 질러 봤다가 또 오열. 왜 오열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지? 동작마다, 만들어진 동작을 따라 추는 게 아니라 즉흥적인 내 몸이 우선하는 동작 마다에도 분별이 있더라. 이 동작은 불편해, 이 동작은 편해, 같은. 명상 중의 무의식에 가까운 동작에도 호불호의 태깅을 멈추지 않는데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분별을 가져다 댔을까 아찔하게 느껴졌다. 뿌리 깊은 분별을 벗으려면 적어도 이 시간의 동작들에게 즉각적으로 느끼는 분별을 지울 필요가 있구나 생각했다. 모든 동작을 그대로 받아 고통도 희열도 내 것으로 그저 포함시키자고 생각했다.
*타다타 : 붓다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이라고 부른 것으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일어난다. 그 밖의 다른 것은 일어날 수 없다.
3/20 am 5:43
오쇼 다이나믹 명상 3일차
못 일어나겠는 걸 억지로 일으켰다. 막상 명상 속으로 들어가니 어제보다 빠르게 몸이 따른다. 정신도 명료하다. 몸이 게으름을 피우라는 요청을 들어줄 필요가 없는 이유. 4단계 시작할때 마치 진공 상태의 정적처럼, 귀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숨소리가 사라지니 먼지가 부유하는 속삭이는 듯한 '샥샥' 공기 흐름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깨어있다는 실체는 이런 게 아닌가. 초 민감한 상태, 열린 상태, 약하지만 강한 상태. 가만히 움직잊 않을수록 발바닥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마치 씨앗이 발화하기 전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것처럼. 어제 읽은 오쇼 구절 ' 내 안의 에너지가 기둥이 된 상태'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21 am 5:30
오쇼 다이나믹 명상 4일차
First stage. Breathing
chaotically through the nose
let the breathing be intense, deep, fast without rhythem, with no pattern and concentrating always on the exhalation. The body will take care of the inhalation.
Second stage. EXPLODE!
Let go of everything that needs to be thrown out. Give your body freedom to express whatever is there. Go totally mad. Screa, shout, cry, jump, kick, shake, dance, sing, laugh. Consciously go mad. be total.
Third stage. Hoo Hoo Hoo
Give all you have : exhaust yourself completely.
Fourth stage. STOP!
Freeze wherever you are in whatever position you find yourself. A cough, a movement, anything, will dissipate the energy flow and the effort will be lost. Be a witness to everything that is happening to you.
Fifth stage. Celebrate!
express whatsoever is there. Carry your aliveness with you throughout the day.
미칠 때 더 미치고 고갈시킬 때 더 고갈시켜야 하는구나. 각 장의 메인 키워드를 정확하게 확인했다. 놓치고 있는 부분이 많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명상은 가장 좋았다. 내 몸이 이 시간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거 같이 가볍다. 주먹에 어린아이 같은 여린 힘 정도만 실리더니 오늘은 제법 큰 힘이 실려 쿵쿵 하면서 매트리스를 때렸다. 완전한 폭발 상태는 아니었지만.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 몸의 움직임에 따르는 것 모두 자유고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 깊게 숲을 쉴 때, 울분을 토할 때 눈물이 터지지 않은 점도 어쩐지 더 용감해 진 것 같아서 좋다.
3/22 am 5:33
오쇼 다이나믹 명상 5일차
벌떡 일어나지는 신비. 첫 스탭의 강렬학 노즈 호흡은 조금 버퍼링이 걸린 편인데 완전한 메드의 상황에서 주먹질은 복싱 연습생처럼 해냈다. 메드한 상태를 상상하면서 뒹굴어도 보고 웃어도 봤는데 비웃음 저열한 웃음을 뱉는 순간 너무 무서워서 오싹한 기운에 압도되고 말았다. 안대를 벗고 주위를 둘러봤다. 누군가 있구나 싶은 공포. 아, 그래서 혼자보다 여럿이 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얘기한 거구나. 웃는 것은 멈추고, 언젠가 누군가 같이 한다면 해봐야지. 비웃는 자, 미친 자가 가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드니, 이것이 또 내 숙제 같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니 나에게 온 것이라고 생각하니 용감해 지는 것도 같고. 익스플로어 폭발할 때 후후 소리에 집중했고 에너지 방전에 힘썼는데 웬일로 들어 올린 팔에 고통이 덜 느껴졌다. 오히려 다리 종아리? 정강이 쪽이 아파서 뛰지는 못했다. 얼어붙을 때 스톱 소리에 또 몸서리치게 놀랐고, 한동안 두려움이 이어졌다. 셀러브레잇이 시작될때 손가락 끝까지 서서히 감각이 일어날 때 환희를 경험했다. 아, 이 순간 때문이 이 명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고. 환희를 감각하면서 미소지으며 사뿐 사뿐 춤을 췄다. 마치 이 세상의 무용수처럼 가볍게 사랑스럽게, 사랑 사랑 사랑 이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면서.
주먹질의 분노와 저열한 웃음의 두려움, 고통에 둔감한 상태와 손 끝까지 퍼지는 여린 생명의 감각, 그리고 사랑의 몸짓까지 너무나 너무나 아름다운 한 시간이었다. 고마워요. 우리 도반들 히나 타라.
3/23 am 5:30
오쇼 다이나믹 명상 6일차
워크숍이 있는 날 아침이라서 유난하게 굼뜬 몸 때문에 오늘 명상은 하루 건너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이 마음을 이겨낸 건 머리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그저 몸이었다. 머리가 체념하듯 따랐다. 영혼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순서는몸 마음 머리.
메드 순서에 익스플로어를 해버려서, 다시 익스플로어를 시작할 때 힘이 빠진 상태.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뻗치고 있는 동작이 오늘은 무거워서 올렸다 내리길 반복했다. 후후 뱉는 숨이 가슴에서 터져나오게 하는 건 훨씬 많은 힘이 들었다. 네 번째 프리즈가 시작될 때 진공 상태에서 초 미세먼지가 부유하는 소리까지 듣는 깨어있음의 환희를 만끽하려면 더 격렬해야 한다. 역시 가장 아름다운 씬은 셀러브레잇. 혜미야 사랑해, 잘 하고 있어, 라고 말해주자 눈물이 흘렀다. 주룩주룩 떨어지는 눈물. 날 위해 흘려주는 선하고 슬픈 눈물. 연민 같은 거 아니고 반가운 인사 같은 눈물.
3/24(월) am 5:27
오쇼 다이나믹 명상 7일차
가장 일찍 들어가 기다린 첫 날. 힘든 걸 견디는 힘이 생겼다. 힘든 걸 견디고 나면 더 큰 이완과 미세한 감각을 포착하는 힘이 생긴다. 손끝과 발끝 감각이 살아나는 느낌. 어제처럼 소리내서 실컷 웃어도 무섭지 않다. 그러니 내가 느낀 두려운 감정이 나란 사람의 디폴트가 될 필요가 없다. 감정으로 부르는 두려움 기쁨과 환희 같은 ... 모든 것이 대단히 중요한 건 아니구나 알겠다. 기쁘면 기쁜만큼 슬프면 슬픈만큼 평균으로 돌아온다.
3/25(화)) am 5:24
오쇼 다이나믹 명상 8일차
명상에 입문하는 것은 수월해졌다. 잠에서 깨 일어나는 것도, 명상 속으로 스며드는 것도 순발력있게 몸이 리드한다. 2단계에서 완전히 허락하는 미친 상태값의 전환이 어렵다. 커다란 사념이 떠드는 소릴 듣는 시간. 3단계 익스플로어에서 처음으로 손을 한번도 내리지 않았다. 대부분 뛰진 못했고 골반 움직임으로 대체. 4단계로 이동할 때 숨의 방식이 바뀌는 방식, 그러니까 입을 벌렸다가 다물고 후후후 뱉던 숨을 코의 날숨과 들숨으로 바꾸는 것이 큰 변화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되는 건지 궁금하다. 5장에서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포함하자며 웃었다. 팔을 둥글게 말고 가득 가득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안아줬다. 이렇게 무엇을 무엇이든 가득 가득 내가 먼저 선뜻 안아준 적이 있던가. 나는 그저 안기고 안기길 바라고 바라고 바랐지 않았나. 5단계에서 매일 다른 만트라가 중얼거려 진다.
평균으로 돌아간다. 3단계에서 골반에 힘을 줄수록 팔에 힘이 빠진다. 그래야 골반에 힘이 강하게 붙는다. 몸은 늘 조화를 해낸다. 서로 공명하는 상태를 만든다. 우리 몸은 이미 완벽하게 평균값을 유지하는 유능한 프로그램이다.
3/29(일) AM 5:34
오쇼 다이나믹 명상 9일차
닷새만에 다시 돌아왔다. 깨어나는 이 새벽이 늘 그립다가 외부의 강제성 없이 스스로 참여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다. 오늘은 몸 안에 에너지 사이즈가 아주 작게 느껴졌다. 폭발하는 에너지가 그러 모아지지 않았다. 팔을 드는데 손 끝까지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손목부터 손가락 끝이 덜렁덜렁하게 떨어졌다. 3단계에 4단계로 넘어갈 때 복식에서 입으로 호흡법이 바뀔 때 그 변화가 마치 누군가 내 몸을 잡아 끄는 것처럼 생생하게 큰 자극처럼 느껴졌다. 셀러브레잇 마지막 단계에서는 언제나처럼 일부러 미소를 짓고 몸을 유연하게 움직이는데, 어떤 시원한 환희가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매일 매일 나아져, 나는 매일 매일 나아져." 어제 알게 된 문구를 소리내 말했더니 훨씬 에너지 레벨이 올랐다. 말에는 힘이 있다. 매일 뱉는 말에도 무게가 있고, 그 에너지가 내 곁을 맴돌고 내 우주를 형성한다. 나는 매일 매일 나아져. 나는 매일 매일 나아져.
어제 팀토론 때, 관조(지켜봄)의 상태가 마치 너무나 관조적(수동태적)이라 생생한 삶의 에너지, 깨어있음과 연결될 때 무엇이 필요한 걸까 질문했다. 문득 명상 중에 깨달았다. 기쁨과 슬픔의 낙차를 좁히는 노력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을 그대로 포함하는 것이 키다. 그렇게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걸 포함하고 포함하고...포함한 것들이, 사랑이, 오버 플로잉 되어" 나눌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3/30(일) AM 6:04
오쇼 다이나믹 명상 10일차
늦게 들어가서 4단계 말미 5단계만 참여했다. 21일 후에 얼마나 후회하려고 게으른 몸의 요청을 마다하지 않는 것인가. 잠에서 막 깨 5단계를 시작했을 때 밤사이 굳은 몸의 근육 세포 관절 하나하나가 열리도록 스트레칭하듯 춤을 추었다. 미소를 짓고 날개짓하고 다리의 각도를 바꿔가면서 근육의 움직임을 느꼈다. 잠에서 막 깼을 때 얼마나 투명하고 깨끗한 상태인지 경험했다. 오쇼의 다이나믹 명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4/1(화) AM 5:24
오쇼 다이나믹 명상 11일차
침대에서 일어날 때의 주저, 갈등의 상태와 대비되는 명상에 곧장 빠져드는 몸의 전환에 여지없이 놀라며. 1단계에서 코로 내쉬는 숨을 (거칠게) 쉴 때 생각이 까맣게 사라지는 걸 느꼈다. 마치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것만큼이나 쉽게 숨을 쉬면 부유하던 생각들이, 머릿속 말의 언어들이 사라졌다. 2단계에서 몸에 힘을 가지고 폭발하는 에너지를 표출하는 게 여전히 힘들다. 꽉 막힌 진공 상태의 어떤 답답함 같은 게 있다. 3단계에서 4단계에 이르기까지 손을 한번도 내리지 않았고, 복부에서 숨을 그러모아 후후후후 뱉을 때는 처음으로 뱃속 내장이 이 명상에 포함된 느낌을 가졌다. 발꼬락 손끝 머릿속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느껴지는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막상 배 주면의 근육과 내장 기관의 움직임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5단계에서는 새로운 만트라 "매일 매일 나아지고 있어." 하면서 활짝 웃었다. 발도 굴러지고 골반도 엉덩이고 신나게 움직여진다. 관절들 하나하나에서 똑똑 똑똑 흩어졌다 새로 만나는 느낌도 기분이 좋았다.
3단계 스톱! 하는 소리와 함께 멈출 때 어떤 희열이 있다. 그 순간 몸의 오싹함 그리고 겨드랑이에서 땀 한 방울이 또로로 흐르는 감각. 오싹함이 두려움과 연결되지 않은 처음이었다. 두려움이란 나의 분별일 수 있겠다. 그저 몸의 반응이었고, 지나가면 되는 일이구나 생각했다. 어떤 것에, 누군가로부터 두렵다는 건, 그저 지나갈 수 있는 거였구나. 일상에서 실험해보고 싶어졌다. 오늘도 역시 고마운 경험이다. 남은 12일은 빠지지 않길 의지하면서.
4/2(수) AM 5:54
오쇼 다이나믹 명상 12일차
마음을 먹는다는 게 "한다"와 연결된다는 걸 알겠다. 이유를 붙이지 않고 일어나면 일어나지는 이토록 쉽고 신비한 경험이 또 있을까. 2단계 폭발하는 단계에서 왜 이만큼밖에 소리치지 못하나, 발구르지 못하나 같은 타박의 말들이 흐려졌다. 이만큼이 되구나 알아채면서 명상에 임했다. 3단계에서 팔을 쭉 들고 있는 건 이제 아무렇지 않고 되레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고통의 무게가 있을 때 다음의 희열이 크다는 걸 알게 됐다. 4단계 절대 침묵과 정지 상태의 두려움도 상당히 줄었다. 거의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위풍당당해진 기분이었다. 5단계에 들어서 몸을 서서히 움직이면 관절 하나하나에서 뚝뚝 소리가 나는 그 순간을 사랑하게 됐다. 오늘도 만트라를 외고 입에 미소를 짓고 춤을 춘다.
오쇼의 다이나믹 명상 5단계는 인생 5막 같은 느낌이다. 누가 만들었을까. 에너지를 끌어올려 방전시키고 절대 매진하는 시간이 지나서 비로소 죽음을 기다리는 환희의 상태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왔을까. 겨우 일단계인가 삼단계 쯤 왔을까. 매일 반복하는 충전과 방전의 자연스러운 몸의 에너지가 지닌 고유한 플로우를 느낀다. 반드시 아름다운 것들과 어우러져 널리 깊이 흐르고 흐를 것이다.
4/7(월) AM 5:20
오쇼 다이나믹 명상 13일차
또 다시 닷새만에 참석. 침대에 그대로 머물고 싶은 저항과 명상 음악에 몸이 미끄러지듯 빠져드는 이끌림. 정 반대의 두 개의 '나'가 존재함을 생생하게 느낀다. 이 두 개의 내가 완전한 합의를 이룬다면 얼마나 멋진 삶이 될까. 오늘은 문득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공부가 여럿의 '나'를 조화로운 하나의 팀으로 만드는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결국 내가 나란 전부를 포함하는 일을 시작해야 가족 내에서 공동체 내에서 사회에서 나라에서 지구에서 우주에서 포함하고 포함하는 일이 가능하겠다고 .... 이 명상은 놀랍도록 먼 사유와 깨달음을 가져다 준다.
온전히 숨을 따르면 사념이 사라진다. 놀라운 집중력은 후각까지 깨운다. 늘 3단계 쯤 되면 산타마리아 노벨라 스킨 향기 가득 느껴진다. 감각 세포들이 일어나면서 초 미세한 감각까지 잡아내는 능력이 나에게 있다. 내가 가진, 인간 모두가 가진 능력치를 인정하게 되는 실제적인 시간이다.
4/8(화) Am 5:20
오쇼 다이나믹 명상 14일차
알람 도움으로 20분에 바로 줌에 접속한다. 그리고 다시 누웠다가 자 시작합니다, 하는 소리에 일어나 바로 명상을 시작한다. 어제처럼 미끄러지는 기분은 아니다. 좀 무겁고 지치는 기분. 그래도 한다. 느끼는 것보다 하는 게 훨씬 백만배 더 중요하다. 2단계 때 뭔가 답답한 상태가 계속됐는데 협소한 공간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더 쾅쾅 내리 차고 온 몸을 크게 휘두르고 싶다. 3단계에서 제자리 뛰기와 골반을 앞뒤로 치는 움직임을 병행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제자리뛰기의 시간을 비등하게 가졌다. 금세 후끈해지는 몸의 온다 땀이 가슴골을 따라 또로로 흐르는 감각 거친 숨소리 괴로움에 눈물이 콱 터질 것 같지만 울 새도 없이 계속 뛰어야 하는 처지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고통은 이런 모양일 거라고. 스스로 이겨내느냐 주저 앉느냐의 차이일 거라고. 4단계에서 그대로 멈추고 팔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늘 떨어져도 괜찮아라고 나에게 허용한 선을 높였다. 떨어지면 안돼. 그대로 기다려. 이 고통이 가득 찼을 때 5단계로 접어드는 그 순간의 환희를 가지고 싶었다.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지만 꽤 많이 무너진 상태로 그러나 고통이 남은 상태로 5단계로 들어섰다. 한참 몰입하다 보니 팔의 고통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렇담 조금 전에 느낀 그 생생한 고통은 무엇인가. 실체가 있는 건가.
그대로 지나가는 것,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오래 살았다. 흘려 보내면 나에게 자국을 남기지 않는 것들에게 공들였다. 그래서 무엇이 남았느냐 하면 한 분야에서 뾰족해 지지 못했다, 좋은 관계 속에 남지 못했다, 어른으로 독립하지 못했다. 문제와 나는 늘 함께였으니 나는 늘 문제였고 문제를 해결해준 누군가를 찾거나 문제처럼 보이는 관계를 차단했다.
잘 지나보내자. 그리고 여기 널린 수 많은 빛을, 아름다움을, 고른 숨을, 자연을 알아채자.
4/9(수) Am 5:22
오쇼 다이나믹 명상 15일차
오늘도 툭 털고 일어났지만 명상에 미끄러지듯 입문하진 못했다. 전체적으로 힘이 없는 상태로 시작. 그렇다고 이 상태를 문제를 가지고 바라보기 보다 평균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길 원했다. 그저 하다보니 5단계에서 새로운 감각에 도달했는데 마치 전율처럼 몸이 잘게 움직여지는 거였다. 특히 엉덩이 안쪽의 어떤 근육은 머리보다 훨씬 우위를 점하여서 능수능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감각의 시원함이라니. 그러니까 천천히 가든 서둘러 가든 힘있게 가든 가엾이 가든 과정에서 만나는 처음은 늘 있다는 것, 이 사실을 잊지 않으면 삶의 어떤 과정에 있다는 사실만이 또렷해지고 만나는 모든 상황을 반길 수 있겠구나.
3단계를 마치고나면 4단계에서 감각 세포가 잠을 깨는데 그때 들을 수 있는 여러 겹의 소리들, 느낌들이 있다. 멀티플렉스에 있는 것 같은, 입체적인 새 소리가 들리고 내 체취에 가까운 겹겹의 향이 들어온다. 감각이 깨어 있다는 건 되게 행복한 감각이다. 섬세하고 예민한 게 부정적인 감정과 닿는 건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4/10(목) Am 5:20
오쇼 다이나믹 명상 16일차
아무 사념이 없는 상태. '미끄러지듯', '답답함' 같은 줄곧 따라다닌 수식어가 사라지고 백지 상태로 명상을 시작한 처음. 어떤 의미 없음의 가벼움을 경험했나. 이내 내일 있을 일들이 순서대로 그려지면서 챙겨야 할 것, 놓친 것들이 쭉 .... 펼쳐지면서 소란해졌다. 한편 오늘 하루를 미리 그려보라, 그 기분까지 느껴보라고 한 자기계발러의 조언이 떠올랐고 혹시 이런 시각화 훈련을 얘기한 건 아닐까 싶었다. 매일 하루를 이렇게 깔끔한 사념 없음의 상태로 시작해 장면 장면을 미리 시뮬레이션 해보면서 디테일을 챙긴다면 인생이 목표 지점으로 가 닿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걸, 머리가 아닌 몸으로 직접 경험했다.
3단계에서 4단계로 이동할 때 입 속이 말라 입을 바로 다물어야 하는데, 그 움직임이 크게 느껴졌었다. 오늘은 크게, 작게, 같은 감각의 정도를 해석하는 말들도 의미가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흘렀다. 감각이 예민하게 깨어있다는 게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무의미로 그저 지나치는 건 아닐까 싶다. 감각이 겨의 나의 감각 언어로 설명된다면 그래서 피하거나 원하는 상태에 머문다면 진정 깨어있다고 말 할 수 없을 뿐더러 그 깨어있음은 지나치게 시끄러울 테니까.
4/12(토) am 5:40
오쇼 다이나믹 명상 17일차
무릎 통증이 크게 느껴졌다. 뛰는 것도 서는 것도 방해가 될 만큼. 이때다 싶었는지 마인드의 소란함이 더해진다. 멈춰라, 쉬어라, 해봐야 소용이 없을 거다 같은 명확한 언어가 아니라 어떤 느낌으로 의지를 부리고 있었고 나는 속수무책인 거 같았다. 이 마인드는 누구인가. 누구의 소리인가. 마이클 싱어가 처음 명상을 시작한 계기도 이 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위함이었다. 마인드와 팽팽한 힘겨루가가 이어졌고 4단계에서는 가만히 서 있기 힘들만큼 몸이 베베 꼬였다. 5단계에 들어서자 조금씩 몸을 풀고 무릎도 발바닥의 열도 살살 풀어주었고 입꼬리를 올리고 혀를 앞니 뒤쪽에 붙이고 미소지어 보였다. "나는 매일 나아지고 있어."
어제의 여운이 길다. 한때 소속된 직장의 문화 한가운데 들어섰다 빠져나왔다.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일이 제일 힘들구나 생각했다. 당신의 현재를 오롯이 살아내는 선후배들 여럿은 환대해주었다. 어쩌면 나의 다양한 면 중에 기억하는 예쁜 하나와 인사해 준 것일지도 모르고, 어쪄면 나의 다양한 전부를 포함해 반겨줬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 자신이 나의 다양함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를 마주할 때의 태도가 결정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자기애의 가장 아름다운 플로우를 경험했다. 타인은 나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다정하자. 사랑하자. 배움이 되는 문화권에 소속되어 있을 때조차 그 배움의 기회를 몰랐다. 그 시절의 나는 심하게 왜곡된 자아상을 쥐고 시끄럽게 굴었다. 얼마나 외로운지 고단한지 지랄 맞은지 표현하고 싶어했고, 그 감정을 해결해 달라며 누군가의 몫처럼 구걸하느라 오만했으니 피할 사람은 적극적으로 피했을 것이고, 힘을 쥔 사람은 도려냈겠지. 그 증오심이 부끄러움이 되고 후회가 되고 이해가 되는 여정을 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열렬하게 나의 전부를 던져 관계하고 일하고 사랑한 곳이기에, 다시 뵙고 웃고 고마워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피하고 도망가는 것으로 과거에 머물지 않고 마주하는 것으로, 과거를 현재에 이어 붙이고 새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내겐 있지 않나. 그렇다면 우주는 늘 용서와 화해, 감사와 이해의 기회를 내게 주는 걸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는 어떤 이유 때문에 움직였겠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는 통합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 삶이 감사한 이유겠구나.
4/16(수) AM 5:32
오쇼 다이나믹 명상 17일차
놀랍게도 5:30분 눈이 떠졌다. 꿈속에서 이문세 옛사랑 노래를 흥얼거리던 중이었는데 컴퓨터를 키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줌으로 입장. 2단계 미친 상태를 허락하라는 주문 앞에서 노인이 되는 느낌이 든다. 입이 헤 벌려지고 괴로움을 닮은 헥헥하는 소리. 힘을 잃은 노인의 절규 같은 느낌이다. 턱이 털어지면 침이 흐를 것 같은 아슬아슬함. 나의 미친 상태는 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나.
3단계에서는 놀랍도록 팔의 감각이 사라졌다. 숨을 쉴 때 사념을 한큐에 제압하는 순간에 쾌감이 있다. 사념 속에 살다가 숨 하나에 고요해지는 상태를 만나면 이 명상 과정이 일상에 꼭 필요하다는 걸 알겠다. 4단계로 진입하는 순간 오싹해져서 눈물이 쏙 흐를뻔했다. 몸이 몇번이나 오싹 오싹하게 떨렸는데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으나 몸의 과장이라고 느꼈고, 또 뭔가 에고로 가득찬 상태인지 의심해보는 냉정한 상태가 된다.
5단계에서 목 부분의 관절과 근육을 툭툭 털어줬다. 마치 라이크 제니처럼 코첼라의 무대처럼 신이 난 사람처럼 흔들었다. 매일 나아지고 있어, 만트라가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제니의 한 달과 나의 한 달을 비교해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리스펙트가 있다. 같은 시간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단순한 삶의 이치를 알수록 나는 겸손해진다. 분발하고 싶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날 다그치거나 하대하게 흐르는 걸 경계한다. 나태하지 말어라, 조급하지 말어라, 미나가와 아키라 할미의 말씀을 다시 새긴다.
4/18 am 5:50
오쇼 다이나믹 명상 18일차
재밌는 꿈을 꾸다가 눈을 떴고 입장하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입장. 절반만 따라갔다. 이 명상은 스테이지마다 뜻이 있어 중간부터 참여하는 걸 참여라 치지 않을텐데도 놓는 것보다 잡는 것이 낫겠지 판단했다. 앞의 순서가 빠지니 3단계 4단계의 몰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5단계 환희심을 누리며 목의 관절과 골반을 흔들며 몸을 털 때 진지한 몰입이 일었다. 생리통도 아닌 통증이 미세하게 이어졌다. 그 미세한 감각이 4단계 때 찌르듯 느껴졌다. 그 찔림을 당하는 고통이 꼭 고통만은 아니고 어떤 희열과도 만나는 것 같아 묘했다. 아직 완경이 올 때가 아닐텐데 두 달 가까이 생리통만 찾아올 뿐 생리혈이 없다.
한 영화 배우는 내가 꾸는 꿈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만들고 그 꼭지점에 가장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그려 넣는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빈 공간을 채워 넣는 방식. 나에겐 브랜드 오너, 52살에 커리어 하이 달성 같은 막연한 이미지와 미나가와 아키라, 노희영, 최성운 같은 요즘 배움의 스승들이 떠올랐다. 막연한 꿈에 지나지 않다가 어제처럼 일에 몰입한 다음 날에는 괜히 성장한 것 같은 웅장한 마음이 든다. 한 걸음 반걸음 어쩌면 움직이려는 추임새 정도의 변화일지 모르겠지만, 일의 몰입을 경험한다는 건 매우 건강식 같은 건가 보다. 몸이 프레쉬한 것들로 가득 채워지는 그런 느낌.
4/19 am 5:58
오쇼 다이나믹 명상 19일차
열 아홉 번째. 자연스럽게 빠져들기 그리고 내가 하는 행동에 의심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반복하는 힘일 것이다. 반복을 통해 어느 부분이 익숙한 패턴으로 자리를 잡으면 다음 과제가 주어지는, 그 과제를 해결하는 힘이 내재화 되어 다시 다음 과제로 기꺼이 넘어가는 인간 성장의 플로우. 오늘 3-4단계에서 두 팔을 쭉 뻗고 있을 때 편안했다. 한 차례도 내려 놓지 않았고 4단계 때 흘러내리는 팔을 두번 번쩍 들어 올렸다. 그때 정신이 또렷하게 전환이 되는데, 그 감각을 제외하면 팔이 하늘을 향해 있는 편이 훨씬 가볍고 편안했다. 3단계에서 왼쪽 무릎이 뿌직하면서 고통을 느꼈을 때 뛰는 걸 멈추다가 혹시나 싶어 다시 뛰어 보길 반복하다가 급세 통증이 사라졌을 때, 아픔의 실체에 대해 생각했다. 아픈 것은 지나간다. 내가 머물 뿐이다. 한 평생 특히 10대 시절의 내 무기력과 목표 없음, 삶을 놓아서 시간을 방탕하게 흘려보낸 내가 떠오른다. 외로움 적적함 삶이 무엇인지, 살아지는 게 무엇인지 모른 체로 헝클어졌던 소녀의 나는 늘 느낌대로 비를 맞고 버스를 타지 않고 먼 거리를 돌아 걷고 잠이 와도 자지 않는 것으로, 열심히 하고 싶어 하는 나를 멀리 두었다. 이 짧은 플로우 안에서 나는 사회도 우조도 인간의 유년 시절도, 삶도 적용시켜 읽어본다. 2단계에서 턱 근육이 풀리고 침이 곧 떨어질 것처럼 노인 같은 헉헉 하는 숨 소리가 뱉으며 허리가 굽고 무릎이 주저 앉아지는 상태가 되었다. 이 '미친' 상태가 편안해 그대로 누렸다. 노인일지 아기일지 모르는 상태라고 생각했고 만약 아기라면 .... 눈물이 고였다. 5단계 환희에서 마치 품 속의 아기를 안고 어우야 둥가둥가 하는 상태의 몸짓 때도 잠시 눈물이 고였다. 내 안에 여러 내가 울 것 같은 상태로 머문다. 울 것 같은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4/20 am 5:25
오쇼 다이나믹 명상 20일차
2단계에서 눈물이 터졌다. 노인의 숨소리를 부리다가 목 주변의 답답함, 헛기침이 시작되더니 마치 자궁 안에서 탯줄에 목이 묶인 잉태되기 전 아기의 형상이 떠올랐다. 그때 눈물이 툭 터졌다. 이것은 나의 드라마인가, 직면인가 묻다가 그쳐, 그치기 위해 의지를 부렸다. 이것은 통제인가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태도인가. 중력을 따라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다니, 참 소중하구나.
3단계에서도 눈물이 가까이 있음을 느꼈다. 어딘가 터져버릴 것 같은 물덩어리가 코끝을 맴도는 느낌. 4단계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끈쩍이는 얼굴 위에 머리카락들이 들러 붙었다. 꾸덕거리는 눈물이었나보다. 그렇게 쭉 손을 들고서 3-4단계를 마쳤다. 이 명상을 시작할 때는 상상할 수 없는 경지다. 몸의 고통이 지나간다는 걸 배운다. 내가 붙잡고 있지 않다면 무엇이든 지나간다. 5단계 환희를 부릴 때 ... 삶의 환희란 눈물이 지난 자리라고 이해했다. 삶의 모든 슬픔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비로소 맞이하는 눈물의 멎음, 그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최고 경지의 기쁨이지 않을까. 어떤 드라마같은 빛의 순간은 찰나일 뿐, 삶의 한 시절이 될 수는 없을 거라고.
4/21 am 5:31
오쇼 다이나믹 명상 21일차
몸이 엄청 무겁고 굳었다. 목을 살짝 움직였을 뿐인데 삐걱 버퍼링이 걸린다. 딱 그만두고 한 시간을 더 자는 건 어때, 말을 건다. 넌 누구니. 힘이 없으면 없는 상태 그대로를 바라보라고 했다. 3단계에서 후후 숨을 쉴 때 비로소 고요하다. 숨의 힘, 알아차림의 상태가 이어진다. 4단계에서 스톱! 소리에 오싹함을 느끼며 입문한다. 이내 팔을 내렸다. 팔의 뜨거운 감각은 올렸을 때나 내렸을 때나 매한가지. 올리고 있을 때가 더 힘든건 아니다. 무엇이든 안다고 믿는 것은 틀릴 거다. 5단계 환희, 천천히 발가락까지 의식을 옮겨 움직여준다. 온 몸이 춤을 추듯 한다. 매일 외는 만트라 나는 매일 매일 나이진다를 외치는데 갑자기 큰 눈물이 터졌다. 기쁨의 눈물이구나, 싶지만 소리도 울음의 생김도 처절하다. 느닷없는 울음 앞에서 슬퍼진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울어서 슬프다. 바로 어제까지 눈물이 멎은 상태가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 싶다며 떠들었는데 .... 울어도 슬퍼도 환희일 수 있따는 걸 알려주는 건 아닐까. 그 무엇도 정의 내리지 말라는 경고는 아닐까. 흐르도록 뒀더니 다시 몸이 큰 동작들로 나를 데려간다. 몸과 마음, 머리가 시원해진다. 이 길로 이끄는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지쳤고, 더 긴 잠을 원했고, 호흡했고, 울었고, 크게 춤췄다. 몸과 마음, 머리가 하나가 되도록 도왔다. 나를 돕는 당신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