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러브' 2011. 1월 개봉
가끔 나의 일부를 떼어 놓을 때가 있다. 그것도 기꺼이 능동적으로. 정확히는 시댁 식구들과 함께 있을 때 대체로 그런 편이다. 그땐 일도 고민도 기분도 멀찍이 둔다. 그렇다고 나란 이 자체가 타인으로 변신하는 건 아닐 테지만. 아무도 직언으로 지시하지 않은, 그렇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스스로는 찾지 않을 역할의 자리로 가 해내야 될 일들은 한다.
'아이 엠 러브'(감독 루카 구아다그니노) 의 엠마(틸다 스윈튼)에게 옅게나마 '나' 를 비춰보는 건 지나친 이입일까. 엠마는 이탈리아 상류층 재벌가로 시집온 러시아 여자다. 겉으론 화려해 보여도 가족행사를 치밀하게 준비하는 가정 비서 역과 아이의 옷가지를 세탁소에 맡겨주는 가정 주부의 역까지. 엠마는 가정 안에 정형화 된 엄마의 자리에 섰다. 굳이 '너란 존재는 애당초 없었다' 는 얼음장 같은 남편의 말을 듣지 않아도 고독했을 그녀의 삶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실컷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을, 아예 자신의 이름조차 잊고 살던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온 건 그래서 참 다행이다. 더구나 사랑에 빠진 이가 요리사라니. 물론 그들의 '영화같은‘ 사랑은 순탄치 않다. 요리사는 아들의 친구이고, 이 관계가 결국 치명적인 슬픔이 돼 엠마를 찌른다. 그렇지만 영화가 비극의 정점을 찍고 맞는 엔딩은 실로 놀랍다. 엠마는 자책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맛본 사랑을 향해 돌진한다. 아들의 옷을 대충 걸치고는 사랑하는 안토니오 곁으로 허겁지겁 달려가는 엠마의 모습이 어찌나 결연한지 불륜 영화의 여주인공이라기 보단, 시대극의 여전사같다. 아이 엠 러브.
영화는 시선을 사로잡는 독특한 앵글과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배경음악과 이탈리아의 상류사회를 엿보는 재미와 밀라노와 산모레의 하늘 아래 함께 걷는 환상의 착각까지 더하며 시종일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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