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
11년 전, 런던에서 몇 달을 머물며 민박집에서 알르바이트를 했었다. 돌아보면 인생의 첫 경험들이 즐비했던 소중한 시간들. 당시엔 30인분 밥물 맞추기 같은 고난이도의 미션들에 스트레스도 꽤나 받았지만, 언제나 막내 동생 돌보듯 보살펴주고 달고 다녀준 주인장 오빠들 덕분에 종종 추억되는 아련한 시절이다. 사진 속 이 날은, 아마도 그동안 벌어둔 여비로 혈혈단신 유럽 여행을 떠나기만을 남겨둔,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이지 싶다. 고마웠다고 아쉽다고 훌쩍이다 취한.
배움도 사랑도 여행길도 머물 곳도 모두 뜻에 따라 이룰 수 있다며 미소짓는 풋풋한 저 여인이 과연 '나'인가. 삶의 많은 것이 결정되고 예정된, 짧은 떠남도 어려워진 현재의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는 말했다. 나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하는 힘이 있다고. 마음 끌리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거친 행동력을 참 멋지게 표현해 준걸텐데. 문득 그래, 저게 바로 나의 걸음의 이유가 되도록 살아볼까봐. 하는 생각이 들었다. 11년 전과 다름없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듯 한번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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