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가거든 꼭 말을 타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빨간 스웨터를 입고 조랑말 위에 얌전히 앉아있는 사진이 한 장 있다. 기억에 남지 않은 그 날이 꼭 거짓말같아 그런 바람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제주도에는 정말 말이 많았다. 차창 밖 풍경으로 여기저기 거니는 말들은 흔했다. 성산일출봉 근처의 넓은 초원에서는 목줄이 달린 말들이 서성이는 걸 가까이 다가가 지켜볼 수도 있었다. 섹스 앤 더시티에서 빅과 캐리가 데이트할 때 탔던 것과 비슷한 화려한 말마차도 리조트 입구에서 매일 대기하고 있었다.
이미 말이 관광 상품으로써 중요한 수입원이 된지 오래인 제주도에서는 말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을 활용해 관광수익을 챙기고 있는듯 하다. 말의 뼈는 관절에 특히 좋다며 건강식품으로 포장돼 꽤 비싼 값에 팔린다. 작정하고 찾은 승마장에서는 단코스 만천원, 장코스 이만 오천원을 내야 말을 탈 수 있었다. 말들은 모두 지쳐있었고, 말을 부리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친 그들은 어떤 거대한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두 줄로 정렬된 끝이 보이지 않는 관광객들을 말 위에 올려놓았다. 고속버스는 쉴 세 없이 말을 타러 들른 사람들을 쏟아내고 떠났다. 긴 줄에 서 오래 기다린 나도 야윈 다리로 휘청 거리는 백마 위에 앉았다. 제 갈 길을 놓치고 풀을 뜯어 먹거나 길게 오줌을 싸는 내 말이 유독 천천히 느리게 걸었다. 아마 가장 늙은 말일지도 몰라 천천함 위에 숨죽이고 앉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말들이 말이 아닌 곳이었다. 다시는 말을 타고 싶지 않다.
2010.9.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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