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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Scene

있을 때 잘하시라! 남자 아닌, 엄마에게




[리뷰] 엄마와 딸의 징글징글한 진짜 이야기 <애자>

사고뭉치 딸 애자(최강희). 공부는 곧잘 하지만 결석을 밥 먹듯이 한 탓에 대학에도 못갈 판이다. 제아무리 '부산의 톨스토이'라 불릴 만큼 한 '글발' 한다손 치더라도 담배피고 술 마시고 거기다 싸움질까지 하고 다니는 이 불량소녀는 문제아로 찍힌 지 오래다. 성질도 있고 고집도 있어 선생님에게 대들다 맞고, 엄마한테 대들다 쥐어터지기도 일쑤다. 이 막나가는 애자를 다스리는 이가 단 한 명 있으니 바로 엄마 영희다. 그녀 역시 동네에서 억척스럽기로 소문난 여장부로, 그 엄마의 그 딸 '모전녀전'이랄까.

수년이 흐른 뒤, 서울로 상경해 자취생활을 하는 애자는 '진정성'을 담은 작품을 위해 줄담배의 위로를 받으며 글쓰기에 매진한다. 아, 하지만 현실은 '글'만 쓰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애자는 바람피우는 애인과 쪼들리는 생활비 등등 문제구덩이를 꿋꿋하게 해치며 스물아홉, 이십대의 마지막을 버텨낸다.

5년 만에 찾은 집, 엄마와 딸이 펼치는 잔소리와 말대답 공방전

애자 애자는 집 떠난 지 5년 만에 오빠의 결혼 소식을 접하고서야 처음으로 고향을 찾는다. 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애자는 눈인사는커녕 일찍 출발했다더니 왜 이렇게 늦은 거냐는 핀잔을 늘어놓는 엄마에게 무심한 말대답으로 인사로 대신한다. 오랜만에 마주앉은 모녀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티격태격 '말' 공격을 주고받으며 열띤 밤을 보낸다.

"취직도 싫다. 결혼도 안한다. 그럼 뭐 먹고 살긴데!!"
"나한테 뭐 해준게 있다꼬 이래라 저래라고."
"고마해라"
"와 고만 하는데, 끝까지 해라! 내가 이래서 집에 오기 싫다 기다!"
"그럼 나가, 이년아"
"내가 나가라면 못 갈 줄 아나"
.....

"김치 가져가 이년아!"


"몰랐습니다...당신과 이렇게 빨리 이별하게 될 줄은... "

어느 날, 애자는 그렇게 씩씩하던 엄마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는다. 깡다구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애자도 이번만큼은 가슴이 철렁한 채, 한 걸음에 부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엄마의 병이 생각보다 깊다는 것과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극진한 간호와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는 애자가 하나 밖에 없는 오빠와 병간호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감독이 하고 싶은 모녀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결국 엄마의 병간호를 책임지게 된 애자는 사랑인지 연민인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이며 엄마의 곁에 머문다.

어떤 애정 표현도 잘 하지 못하던 엄마도 서울에 볼 일이 생겨 떠날 채비를 하는 딸에게 "퍼뜩와. 애미 심심해"라고 적힌 쪽지를 건네며 애틋한 마음을 비로소 드러낸다. 이렇게 두 모녀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챙기고 돌보기 시작한다.
 
영화가 중반부로 급하게 치닫을 때까지 두 모녀의 모습은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다. 가족의 모습이 항상 오후 2시의 햇살같이 따뜻하지만은 않듯, 남에게는 하지 못하는 독한 말을 퍼붓는 이 징글징글한 엄마와 딸의 모습에는 현실감이 잔뜩 배어있다.

실제 모녀 400쌍의 에피소드로 <애자> 시나리오 탄생

애자 2008년 부산영상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최우수상을 수상한 <애자>는 신인 정기훈 감독이 장장 4년 동안 매달려 준비한 작품이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남자 감독의 감수성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모녀 관계를 세심하게 그려내 한 편의 감성 드라마로 탄생됐다.

이렇게 리얼한 모녀 관계가 영화로 만들어 진 배경 또한 남다르다. 정기훈 감독은 탄탄한 시나리오의 완성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수소문해 400쌍의 모녀를 만났다. 그들에게 모녀 지간의 갈등과 화해 방법 등을 묻고 들으며 그들이 들려준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엔딩크레딧이 오르면 엄마가 그리워져

<애자>를 본 뒤 엄마가 보고팠다. 무조건적인 애정을 쏟아 부으며 날 키웠을 엄마가 어느날 갑자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곳으로 떠난다면. 이렇게 영화의 슬픔이 내 것인양 체감된 데는 기대 이상의 호연을 펼친 두 배우 최강희, 김영애 공이 크다.

엔딩크래딧이 오르면 새삼스럽게도 그 무엇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가슴에 저벅저벅 박힌다. 지금 엄마가 내 곁에 머무는 것도, 당장 엄마에게 전화 걸어 "엄마! 이 영화 꼭 같이 보고 싶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도 유한한 시간 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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