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었어도 10번은 더 죽었겠다."
" 그대로 앉아서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엔딩 크레딧이 끝날무렵 짧은 감상평을 나눴다. 156분 동안 불안하게 다리를 떨던 그와 잦은 탄성을 내지른 나의 감흥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듯 멀었다.
영화를 복수극에 방점을 찍어 봤다면 빈약한 서사에 불만족스러울 것이고, 곰과 사투를 벌이는 스펙타클한 장면에 매료됐다면 짜릿한 쾌감의 팝콘무비로 만족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나와 같이, 한 인간의 빼어난 세계관에 넋을 잃고 휘청일 것이다.
영화는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아비(글래스)가 아들을 죽인 철천지 원수를 복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 남는다는 줄거리다. 복수극이란 단순한 줄거리가 영화의 약점으로 꼽히는데 난 좀 다르게 봤다. 이냐리투 감독의 전략일지도 모른다고. 이 단순함이야 말로 지독한 설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인간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지 않을까, 덕분에 비현실적인 겨울 숲의 아름다운 풍광도 빛을 발하지 않은가.
살을 에는 추위를 버티기 위해 죽은 말의 내장을 걷어내 꽁꽁 언 가죽을 들어 모로 눕는 장면은 영화를 통틀어 압권인데, 살아 남고자하는 글래스의 의지가 최고점에 닿은 씬이기도 하다. 그가 극한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버티는 힘이 ‘복수’ ‘자식을 잃은 슬픔’ 같은 진부한 감정이라 해도 살고자 함이 얼마나 처절하게 빛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보는 동안 자주 탄성을 내질렀는데 이 장면에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원주민에게 발각된 위기의 상황. 폭포수에 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글래스. 죽었을까 싶은 순간 마치 한 마리의 물고기가 거친 물살을 가르듯 화면에 잡힌다. 이내 클로즈업 된 그의 얼굴은 영화 중에 유일하게 볼 수 있는 평온한 표정이다. 굳어 움직이지 않던 다리는 물결을 따라 춤을 춘다. 영화라서 가능한 기적의 순간이지만 닥친 난관을 동물적 선택으로 전복시키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이 장면은 짜릿했다.
감독은 얘기하고 싶은 것 같다. 이 세상의 생명 전부에게는 선과 악 또는 높고 낮음의 기준은 없다는 걸.
우리는 다름 없이 먹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음을.
영화는 대부분 실제 자연환경 안에서 촬영됐다. 30도 이하의 눈밭과 물 속 장면도 CG가 아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았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자연빛과 불빛만 사용하는 원칙도 고수했단다. 감독의 타협없는 연출과 그의 뜻을 지지하는 배우의 폭발하는 연기가 <레버넌트>를 완성시켰다. 보고도 믿기 힘든 예술의 경지다.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글래스의 여정을 통해 자연은 물론 인간의 본성을 파헤쳐 경이로움과 새로운 발견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냐리투 감독의 말이다.
희망과 경이로움이라면 내가 본 그대로다. 영화는 언제나 영화 이상이란 나의 믿음을 견고히 해준 작품에게 별 다섯은 아깝지 않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
ps. 누군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레버넌트>의 레오 연기를 보라고 말하겠다. 그의 치열한 연기에 감동하고 말았다. thanks leo.
'Film Scen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지는 삶 원더휠 (0) | 2019.08.24 |
---|---|
라라랜드 lalaland (0) | 2016.12.20 |
행복의 기원 (0) | 2015.05.28 |
WIlD (0) | 2015.02.02 |
그렇게 아버지를 된다 (0) | 2014.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