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광화문의 링거 맞는 나무
봄에, 서울 동남지역 대로변 가로수의 20퍼센트가 고사했다. 고사율은 예년 수준이었다. 고사한 가로수는 대부분이 작년에 묘포장에서 옮겨심은 1년차 나무들이었다. 죽은 1년차 나무들은 도심지역에 이식되기 전에 묘포장에서 4년 동안 적응훈련을 받았다. 뿌리와 가지를 반쯤 잘리고 물기 없는 땅에서 돌멩이가 많은 땅으로 옮겨가며 악지 적응훈련을 받았다. 묘포장에서는 이 나무들을 훈련목이라고 불렀다. 훈련목들은 뿌리가 뽑힌 채 햇볕을 받으며 며칠씩 버려지며 지옥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견디고 살아남은 나무에는 ‘수료목’이라는 인식표가 걸렸다. 수료목들은 봄에 도심에 이식되었고 1년차인 이듬해 봄에 반 정도가 죽었다. 수료목들은 매설물이 깔린 도심의 지하에 활착하지 못했다. 포장된 도로에서 빗물은 땅속으로 스미지 않고 노면수로 넘쳤다. 수료목들은 땅속으로 수직근을 내리지 못하고 지표 밑을 따라 수평으로 뿌리를 뻗어나가다가 보도블록 틈새로 실뿌리를 내밀어서 물기를 빨아들였다. 봄비가 내리고 눈 속에 섞인 염화칼슘이 녹아서 보도블록 틈새로 스미거나, 백화점과 명품상들이 봄맞이 단장을 하느라고 점포 앞 인도에 눌러붙은 껌을 긁어내고 합성세재를 풀어서 보도블록을 물청소하고 나면, 1년차 수료목들은 우듬지부터 말라 죽었고, 실뿌리들이 보도블록 틈새에서 바스라졌다.
김훈 '공무도하' 중에서.
광화문에서 경복궁으로 걸어가는 길에 쭉 늘어선 나무들 거의가 링거 주사를 맞고 있었다. 몇 주 전에 걸었을 땐 아픈 나무가 한 두 그루뿐이었는데 그새 많은 나무들에게 번져졌다. 올해 초엔가 '공무도하'의 한 구절을 읽은 뒤로 가로수의 존재를 망각한 채 바삐 걷던 습관을 놓고 길가 나무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일상 속 가장 친한 자연인 나무들에게 뭐든 해주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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