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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엄마와 첫 여행, 정말?

 
 
엄마가 딸들이 여행 한 번을 같이 가지 않는다는 말을 몇 번 서운한 투로 전하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하는 심드렁한 마음과 다 큰 자식과 여행이 가고 싶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무지가 날 차갑게 만들었다. 언니의 결단으로 셋이 함께 떠난 여행. 스위트룸과 오마카세를 예약하고 그것으로 대부분의 불편함이 희석되길 바랐다. 엄마는 어린 힘이 느껴질 만큼 잘 걷고 잘 먹었다. 워낙 총명해서 말귀도 바르고 말소리도 맑았다. 귀찮아하는 법도 없이 씩씩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나는 무엇을 어디부터 오해하고 있던 걸까.
 
언젠가부터 엄마의 뚜 … 한 디폴트 표정이 크게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내 미래 모습이 엄마의 지금 모습일 거라고 스스로에게 알렸다. 지금의 엄마가 사랑이어야, 아픔이어야, 그대로 괜찮아야 나의 텅 빈 가슴이 채워질 것이다. 성공은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딸들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과 당당하게 리드하고픈 마음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는 꿈의 모습과 주민 센터에서 피아노를 더듬더듬 배우는 현실의 모습이 찌푸린 표정을 만들어 냈을까. 지금의 엄마가 스스로를 사랑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자동적으로 부정하는 나의 존재를 포함하기 위해 풀어야만 하는 결정적 질문 같았다.
 
분홍색 모자와 스카프, 총천연색 블라우스와 청바지, 보라색 바람막이 잠바와 검은색 운동화 그리고 빨간색 배낭으로 들뜬 여행자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서울역을, 강릉역을, 초당동의 아트숍들의 가파른 계단을 같이 걸었다. 엄마 조심해, 여기 내려놔, 여기 앉아 있어, 이거 마셔, 천천히 해, 괜찮아 같은 아기에게 할 법한 말들이 이어졌다. 엄마는 어른이지만 아이였다. 세월이 우리의 자리를 바꿔 놓았구나. 나는 마흔여섯 살에 빠릿빠릿한 막내딸을 해내느라 바빴다.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릴렉스 모먼트를 위해 돗자리와 엘렌 스콧을 가방에 챙겼다. 호텔 와인잔을 수건에 돌돌 말아 바다 곁으로 나섰다. 엄마와 언니를 모래 바람 가운데 철퍼덕 앉혀 놓고 와인잔에 따른 쇼비뇽 블랑을 건넸다.  
 
엄마는 연신 너무 좋다 너무 좋다 너무 좋다고 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아빠가 흔들렸다는 둥 어둡다 눈 둥 해서 찍는 걸 포기했다길래, '에이 그러지 마'하면서 다시 찍도록 했더니 정말이지 모든 장면을 스스로 카메라에 담았다. 찍은 사진을 톡으로 보내는 법을 몰라 알려 드렸더니 드디어 할 수 있게 됐다며 야호야호 환호다. 새 이해에 도달한 자의 생생한 행복은 전염되는 것이었다. 언니와 나도 기뻐서 서로 눈을 맞추며 자꾸 웃었다.
 
엄마는 일찍 깊은 잠에 빠져들고 언니와 나는 새벽 두 시 가까이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함께 한 경험의 기억은 드라마틱했다. 각각의 이해가 충돌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이해로 흐르는 지금이 참 소중하구나 싶었다. 언니는 코칭을 배우고 나는 트라우마를 공부 중이다. 덕분인지 질문하고 알아채고 변화할 채비를 하는 서로를 따뜻하게 위하는 마음이었다.
 
엄마가 허벅지를 찰싹 때려 깜짝 놀라 일어났다. 거짓말 같은 주홍빛 해가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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