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다가 제주로 가고 루다가 머문 곳마다 헝클어지던 공간이 그대로를 유지한다. 루다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와도 쫄리지 않고 느긋이 할 일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밥을 두 끼 차리다가 한 끼 차리는 건 왜 이렇게 쉽게 느껴지는지. 젤이랑 둘이서 소곤소곤 얘기하니까 좋고, 젤이가 신발 사러 가자는데 데이트 신청받은 것처럼 설렌다.
루다가 너무 보고 싶다. 이 정도로 사랑했나 싶게 보고 싶어서 반성하게 된다. 아이의 발목을 잡고 있었나, 아이의 등 뒤에 업혀 있었나, 아이가 날 위해 베푼 무조건 적인 사랑이 새삼 크구나. 애가 이틀 만에 발목을 삐고 삔 곳을 또 삐었단다. 엄마, 나 여기 있어, 엄마 거기 있어? 신호를 보내는 건 아닌가. 내 불안이 아이에게로 흐른 건 아닌가.
좋아, 이 불안을 다뤄보자. 관여하고 싶은 모든 소란으로부터 거리를 둬보자. 스스로 투명하게 머물기. 나란 없음. 무언가 불편하다면 내 그릇이 작기 때문이려니, 관여하길 멈추고 그릇을 키우는 기회로 삼아보자고 마음을 만진다.
숨 하나 숨 둘... 아멘, 하나님 부처님 아, 존재계여.
루다는 갖고 싶어서 가졌고, 낳고 싶은 날 낳았다. 과일 많이 먹으면 예쁜 아기 나온 데서 그렇게 했다. 서촌으로 출근하던 시절이라, 토속촌 같은 건강한 음식 챙겨 먹었다, 후식으로 먹는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어서 먹을 때마다 이렇게 달콤한 아기를 만나겠네, 하면서 신났었다. 젤이 돌보는 일 때문에 회사를 관둬야지 하는 생각을 길게 했었는데, 루다가 생기자마자 기쁘게 사표를 냈다. 기네스 팰트로우 딸 애플이 당시 꼬마였는데, 그 소녀의 사진을 붙여놓고 자주 보면서 루다를 생각했다. 딸이면 좋겠다고 바랐지만 아들도 상관없었다.
선생님 손에 막 꺼내져 나온 순간 머리칼은 까맣고 다리는 길쭉한 여리디 여린 아기가 너무 예뻤고 울었고 그대로 잠들었다. 2시간 수유텀도 힘들지가 않았다. 만날 때마다 볼 뽀뽀를 해서였을까, 열이 올라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응급실로 향했다. 울면서 초유를 짜서 맨발로 배달했던 날들이었다. 한여름에 불쑥 발이 저릿 시릴 때마다 슬리퍼 신고 에어컨 바람맞으면서 루다에게 씩씩하게 향한 날들이 떠오른다. 부족한 초유 먹어치우면 정량 이상의 분유도 꿀꺽 먹고 씩씩하게 지냈다. 아픈 아기들은 이렇게 못 먹는다면서 간호사 선생님이 창 밖에서 우는 날 달래주셨을 때 그 감사함이 아직 가슴에 그대로다. 엄마가 아이를 낳으면 세상이 도와준다. 사장 시작할 때도 세상이 전부 도와줬었다. 세상은 아무튼 지간에 모두를 돕고 다시 돕는다. 이걸 그땐 몰랐고, 지금은 안다.
루다는 아주 아기 때부터 눈 맞추면 웃고 혼자도 웃고 스륵 잠들고 그랬다. 배고파 우는 일 말고는 소리 내는 법도 없었다. 50일쯤부터 6시간씩 잤다. 엄마 눈에 예쁘면 다 예쁜 게 맞긴 하는데 지다는 사람들도 딸이냐고 물을 만큼 예뻤다. 젤이 한 테 못해준 거라, 루다는 품에서 키워야지 했다. 산후 우울이었을 텐데 뭔가 허전하고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가난한 마음이 들 때마다 루다 품에 안고 공원으로 가 블랭킷 위에 아기 눕혀 놓고 FM2로 사진 찍었다. 필름 인화하고 앨범 만들고 그랬다. 봄에는 목련 곁에 눕히고 가을에는 단풍 곁에 눕혔다. 그렇게 대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서 때로 답답해하며 혼자 있고 싶어 하면서 아기들이랑 8개월을 살고, 다시 출근했다.
우리 엄마는 늘 말했다. 여자도 일을 해야 한다고. 여자가 일이 있고 경제력이 있으면 무서울 게 없다고. 어릴 때 엄마 너무 기다리다가 화가 난 꼬마가 소녀가 되면서 엄마와 멀어졌기 때문에, 엄마 말 안 듣기 1등이었는데, 어쩐지 엄마처럼 살았다. 엄마를 기다리다가 운 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데 한젤이를 할머니에게 보냈으니까.
시계도 볼 줄 몰랐던 어린 나는 엄마의 구두소리가 어쩐지 늦어진다 싶은 느낌이 들면 이불 속에 들어가서 엉엉 울었다. 또각또각또각. 한 밤이 되어야 돌아오는 엄마였고, 그때까지 아빠는 글쎄 아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가 먼저 들어와서 집을 치우거나 저녁을 차려주는 일은 없었던 거 같다. 기억에 없다. 더 늦게 취해서 들어온 아빠랑 엄마랑 싸우던 소리, 같은 게 파편으로 번쩍번쩍 기억에 날 듯 말 듯하다.
어쩐지 외로운 날 되물림했다. 어린 한젤이를 할머니 품에 맡기고 엄마가 아닌 사람처럼 산 시절이 길다. 아이들이 평생 날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리석다. 엄마, 엄마의 정서 그것 하나면 충분한 어린 시절을 다시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다. 너무 늦어버렸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남아 있을 거야, 하고 생각한다.
"존재계는 하고자 하면 그 길을 열어 주신다."
아무튼, 다시 루다로 돌아와서.
루다에게 어린 나를 본다. 내가 엄마한테 받고 싶었던 가득한 사랑, 무슨 얘길 하든 “잘했어!”라는 가득한 수용을 준다. 자기 생각말할 때도 “맞아!”라고 동의한다. 힘 하나도 안 드는 일이다. 집안일 신나게 하고 짜증 안 부리는 것도 잘하는 편이다. 일하고 돌아와도 웃으면서 잠드는 것도 노력해서 하는 편이다. 예전에 엄마에게 서운했던 걸 답습하지 않기 위해 한다. 그러면서 계속 엄마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다. 그 시절의 엄마의 외로움 두려움 같은 것을 안아주고 싶다.
엄마의 선택에 내가 관여할 수 없다. 자식인 나는 그저 당신의 선택을 동의할 뿐이다. 내가 해내야 우리 아이들도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루다를 보면 거의 거울처럼 엄마가 보인다. 엄마를 보면 거울처럼 내가 보인다. 루다가 루다를 보면서 루다를 보면 좋겠다. 나 말고 할머니 말고 루다, 자기 자신과 만나길 바란다. 그러니, 나는 한걸음, 아니 두 걸음쯤 뒤로 빠져야 겠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같은 욕망을 부리기보다, 그저 네가 무슨 선택을 하든 동의하는 것으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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