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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일년마다

일요일 글쓰기 1 , 올해를 시작하며 죽음을 생각하자 감탄하자 정리하자

미나 페르호넨 탬버린 원단으로 제작한 미니백 , 올해 첫 신상품

 
 

 
미나 페르호넨 탬버린 원단으로 미니백을 만들었다. 그리고 초록댄서 스튜디오 스마트 스토어 상품 등록을 마쳤다. 여기까지 해내기 위해 하루의 절반을 몰입했다. 제품 상세 페이지 제작은 판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고객과 마주 바라보는 일이다. 우리 모두의 얼굴에는 각자 마음이 서려 있다. 상세 페이지에도 나라는 제공자, 생산자, 판매자의 얼굴이 글과 사진으로, 그리고 제품을 소개하고 제안하는 방식으로 드러날 것이다. 정말이지 중요한 일이구나, 새삼 깨달으며... 하물며 미나 페르호넨이 아닌가.
 
덤벙거리고 서두르는 내가, 늘 편안함을 추구하는 내가, 이 몰입의 불편함에 저항하는 뇌의 소리침을 무시한 채 묵묵하게 일했다. <흑백 요리사>에서 선수들은 한결같이 얘기한다.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나 자신에게 후회 없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자세야말로 프로가 갖춰야 할 태도다.

나는 손정원 프로의 정신 세계와 그 세계를 비추는 말의 향연에 감탄하느라 프로가 될 생각은 못했다. 그저 오타가 나오지 않도록 제미나이와 함께 일했다. 얘도 나도 열심히 했다. 최선을 다 했는지는 모르겠다. 너무 피곤하고 기분이 좋다. 이 상태로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면, “후회가 없어요 이것으로 충분히 양광입니다” 같은 프로의 말을 뱉게 되려나. 이 기쁜 상태를 자주 가져봐야겠다. 일에 노력해보자는 다짐이다. 다짐의 실체를 경험하고 또 경험한다면 원하는 일의 결과가 현실이 되어 있겠지.
 
 
숙제말고 축제
 
새해에 호암 미술관도 다녀오고, <흑백 요리사>도 보고,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 그리고 <편리함의 습격> 두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삶이 곧 죽음이구나 하는 생각부터 죽음이 삶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누군가 살기 싫어서, 살지 못해서 죽지만, 그 죽음이 이후의 삶들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는 미처 알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깨끗하게 죽어버려야지, 같은 건 없다고. 죽음이 깨끗하려면 주어진 생명을 온전히 살아내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그러니 숙제처럼 말고 축제처럼 살아야 한다. 
 
매 순간은 어려워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감탄하고 싶다. 풀로 종이와 종이가 붙는 것만 봐도 와! 탄성을 터뜨리는 아이의 순수를 가지고 싶다. 궁금해하고, 오래 듣고 싶다.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내 주변을 잘 정리하고 싶다. 깨끗하려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또 천천히 이동해야 한다. 마무리를 잘 짓고 새 일을 시작해야 하고, 매일 가지고 다니는 것들에게 제자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지난달 옷장부터 정리 정돈을 시작했는데 잘 되고 있다. 이제는 작업방 환경에도 적용시켜보는 중이다. 서랍마다 역할을 줬고, 작은 보관함들마다 이름을 붙였다. 가위를 들고 다 쓰면 제자리에 다시 꽂는 연습은 좀 더 필요하다. 결국 물건이 사용한 마지막 자리에 널부러져 있지 않도록, 정리 시간이 따로 필요 없을 만큼 그때그때 제자리에 둔다. 이걸 왜 하고 싶은 걸까? 곧 죽을지도 모르니까. 죽으면 정리할 수 없으니까. 죽은 뒤에 나라는 사람이 기억될 때 적당히 아름답고 싶으니까. 
 
부탄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 
 
부탄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매일 다섯 번씩 죽음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음을 생각하면 왜 행복할까. 죽음을 상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묻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살피는 일상을 살게 된다. 행복이 극적인 드라마가 아니라면, 매 순간 가장 중요한 것, 아침에 눈을 뜨는 것,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는 것, 아들과 눈 맞추고 함께 웃는 것 같은 예쁜 순간이 거듭거듭 내 경험이 되고 기억으로 남는 순환이 행복이라면,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죽음을 기억하면 지금 이 순간을 살게 되는 건가. 

루이스 부르주아 작품에서도 느꼈다.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치열한 삶은 고통이었음을. 그러니
누구라도 매일 다섯 번씩 죽음을 기억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산다 한들 고통을 피한 행복일리 없을 것이다. 결국 올해는 좀 더 불편해지자는 얘길 하고 싶은 가 보다. 생생한 삶 쪽으로 한걸음 들어서자는 용기 같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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