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울에 쭉 살면서도 삼십 년 만에 제주도 땅을 처음 밟았어요.
큰 기다림 끝이라서인지 처음엔 살짝 인상이 찌푸려졌었죠.
서울과 다를 바 없이 빼곡히 자리 잡은
널찍한 간판들이 아름답지 않았고
하우스 감귤, 한라봉은 물론이고 생수 같은 것도 장소에 따라
터무니없이 값비쌌거든요.
기대가 무너진 느낌 있죠. 공항 밖에 나오는 순간부터..
뭐 예상 못한 건 아니래도 너무나 관광 화된
도시 풍경에 말이에요.
그래도 자전거에 몸을 싣고 둘러본 1박2일 동안의 북서쪽 풍경은 끝내줬어요.
특히 한림항을 지나 나오는 협재해수욕장은 최고였죠.
곱고 하얀 모래와 말그대로 청록색 바닷물이 눈 앞에 펼쳐져 있는데
수심이 낮아 엎드려 누우면 물결이 배주변으로 찰랑 거려요.
그 산뜻한 감촉이 온 몸에 고스란히 와 닿는거죠.
그렇게 태양에 몸을 맡기고 잠이 들면..
지치도록 찾아 헤맨 말 그대로의 '행복' 을 손 안에 움켜잡은 듯해요.
그리고 바로 이 곳, '김영갑 갤러리' 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요.
요즘에도 가끔씩 제주 바람이 가슴 안으로 휘익..불어오면
그곳에서의 시간 속으로 스르륵 잠기곤 하거든요.
김영갑 작가 처럼 도시에 미쳐 사랑에 빠지는 거, 참 멋지죠.
물론 그의 자서전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어보면
늘 외롭고 배고팠던 그의 삶이 로맨틱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되지만..
그럼에도 그가 남긴 작품들을 보노라면
'그래 맞아. 뭔가에 그것도 한 가지에 지독하게 미쳐야 해.'
중얼중얼 되뇌이게 되죠.
초원과 바다와 돌담과 오름들 사이에 카메라를 들쳐 메고
이리 저리 뛰다녔을 김영감작가의 모습이..
아, 닮고 싶은 열정처럼 멋져 보였어요.
더구나 '김영갑 갤러리' 는
그가 루게릭 병으로 모든 근육이 사그라져 숨을 다할 때까지
지극 정성으로 가꾸고 돌봐 이룬 그림같은 장소에요.
자연으로 이룬 아기자기한 장식들과 아담한 돌담들..
초록의 나무와 이름 모를 풀과 꽃들에게서... 그의 손길이 느껴졌어요.
갤러리 내부 또한 심플하고 깔끔하고요.
심신이 충분히 느긋해지는, 예술을 위한 영감의 공간 같았어요.
꼭.. 제주도를 사랑한 김영갑 작가의 소박함을 빼닮은 듯해요.
저는 마음에 드는 사진과 액자도 사 왔어요.
푸르른 나무 한 그루가 하늘 아래 땅 가운데 오롯이 서 있는..
그 나무 한 그루가,
하늘과도 땅과도 마주한 겸손한 모습이지만 한편 당당한 모습이기도 한..
마치 청춘. 젊음. 꿈.을 떠올리게 하는 가슴 떨리는 사진이에요.
꼭 그렸다고 해도 믿을.. 현실같이 않은 현실인 거죠.
침대 옆에 걸어놓고 매일 아침 눈 뜨자 마자 봐요.
그 푸르른 나무처럼 쭈욱.. 살고 싶어서요.
김영갑 작가가 생전에 얘기했어요.
시내 중심가 곳곳에서 사진전을 열어봤지만 그리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았다고. 지금 이 두모악이 비록 외지일지 몰라도
진정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물어물어 찾아 올 거라고요.
제주도에 가면 꼭 들러보세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제주도의 숨은 매력들을
그의 사진을 통해 만나실 수 있으실 거에요.
아니, 아마도 그 이상일 거에요.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양장) - 김영갑 지음/휴먼&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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