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미쉘 윌리엄스가 주연한 두 편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2012)와 <블루 발렌타인 Blue Valentine>(2010)은 우리가 알던 '사랑'이 결혼이란 울타리 안에서 얼마나 분분히 흩어지는지를 직시한다.
고민 안에 '사랑'만 있고 결혼은 없던 그 시절에, 만약 이 두 편의 영화를 만났다면 과연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자문은 지금의 결혼 생활이 불만족스럽다거나 불완전하단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다만 가슴 안에 붉게 타던 그 '사랑'을 떠나보냈다는 어쩔 수 없는 상실감과, 더 이상 낯선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이해의 과정이다.
<블루 발렌타인>의 주인공 딘(라이언 고슬링)과 신디(미쉘 윌리엄스) 부부가 키우던 개가 죽은 채 발견된 날, 서럽게 울던 딘은 불현듯 제안한다. 여기를 벗어나 추억이 깃든 그곳에서 그때처럼 사랑을 나누자고. 신디는 알고 있다. 나도 안다. 그 시간과 감정을 되찾을 방법은 없음을. 지난 날을 붙잡으려 할수록 더 큰 상처만 남길 뿐임을. 딘이 숨 쉬듯 뱉는 '사랑'한단 고백은 더 이상 신디를 설레기엔 무력하다.
현실에 영화의 엔딩을 반영하기엔 우리 각자의 사연이 제각각 복잡할 터. 다만 난 낙관적인 방식으로 '결혼 후에는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는 한 선배의 말을 종종 떠올리며 사는 편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되풀이되는 일상 안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이다 고요한 밤이 내리면, 여지없이 또로로 도어록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발소리에 묘한 안정감을 느낄 때. 이 역시 사랑이라면 사랑이려니 한다.
창을 밀고 들어선 봄볕이 따갑다. 창과 마주한 왼쪽 뺨이 벌겋게 익고 있지만 따끈한 이 시간은 정말이지 귀하다. 밀린 설거지와 둘째의 닭가슴살 이유식을 거기에 첫째의 새우살 볶음밥까지 한 큐로 해내고, 이불 빨래를 돌려놓고 또 한번의 설거지 뒤에 그의 동의를 구하고야 얻은 자유다. 나 역시 신디처럼 '사랑'보다 다른 무엇, 특히 조각일지언정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블루 발렌타인>은 <우리도 사랑일까>를 봤을 때와 비슷하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리게 공감한 영화다. 무엇보다 집안 일에 휘둘려 멍한 내게 짧은 토막글이라도 쓸 수 있게 해줬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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