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케임브리지에 다니는 나 자신을 상상해봤다. 오래된 건물의 복도를 걸어가면서 기다란 검은 로브 자락을 휘날리는 대학원생.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목욕탕에서 팔을 뒤로 꺾인 채 몸을 구부리고 머리가 변기에 쳐박혀 있었다. 나는 학생으로서의 내 모습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썼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검은 가운을 휘날리는 그 소녀를 상상할 때마다 또 다른 소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났다. 학자 아니면 창녀, 두 가지 모두가 사실일 수는 없었다. 그중 하나는 거짓이었다.
<갈 수가 없어요.> 내가 말했다.
<등록금 낼 돈이 없어요.>
<등록금 걱정은 나한테 맡겨요.>
스타인버그 교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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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얘기를 거리를 두고 기록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발휘한 흔적. 당신의 내적 외적으로 경험한 엄청난 얘기를 혼신의 힘으로 읽은 밤들. 잊지 못할 것 같아. 록산게이의 <헝거>를 읽을 때만큼, 아름답구나 생각했다.
이 아름다움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는 용기, 다음의 나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의 실패 슬픔 분노 처절함을 자기연민없이 내보일 수 있는 힘이다.
나의 바닥부터 얘기를 시작하는 일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바닥의 나를 마주하는 고통이 사랑의 시작이다.
PS.
잠자는 걸 포기하며 공부만 하다가 위궤양에 걸리는 경험이 내 삶에도 있다면 ...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되려면 ...
떠오르는 것들, 사진과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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