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제주
가파른 골목 너머 막다른 길목에 다다른 심정으로 살았다. 하루가 저물길 바라고 다시 시작된 하루에 안도하면서 이대로 삶이 끝나도 충분하지 했다가 잘 살고 싶다고 노래했다.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어 걷고 숨 쉬고 일기를 썼다. 날 적은 시간이 보살핌의 전부라는 걸 알아채고 쓰기를 멈추지 않은 것에 고마웠다.
직장인이 된 후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찬 증상이 종종 나타났지만, 비행기에서 내려야겠다고 짐을 들고 뛰쳐 나오긴 처음이었다. 스스로 통제가 안되는 몸의 증상, 어쩌면 마음의 병, 뇌의 이상 뭐가 됐든 이상하지 않은 아무튼 그것들이 통제가 안 됐고,, 당황스럽고 아팠다. 같은 비행기 탑승자들은 영문을 모른 체 대기 중이라, 눈물이 흐르고 심장이 요동치는 그 순간에도 아 저분들이 뭔 고생이지 싶어서 다시 출발해 보자는 마음을 여럿차례 가졌다. 노련한 스튜어디스가 이륙하면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괜찮아, 내리도록 도와줄게, 라고 말해 주었다. 그 뒤로도 한참 후에 잠겼던 비행기 문이 열렸고 거의 뛰다 시피하는 항공사 직원분을 따라 국정원 어르신과 인터뷰까지, 비행법 규정 상의 절차를 다 밟고서 한 시간 여만에 상황이 종료됐다. 나로 인해 불편했을 모든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 빚을 졌다.
이게 곧 나란 존재를 스스로 가꾸고 공들이지 않으면 세상에 저지르는 민폐다. 매일 고른 숨이 쉬어지도록 마음을 살피고 평온을 읽고 감사를 발견하는 일은 특별한 틱낫한의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이어야 한다.
다음날 새벽, 제주행에 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도 탑승하지 못하면 병원 치료를 받자고 마지막 테스트처럼 임했다. 새벽 첫 비행기의 헐렁함이라면 해보자 싶었고 예상과 다르게 새벽의 공항은 북새통이었으나, 맨 앞줄 유료석에서 비교적 견딜만큼 괴롭게 제주에 도착했다.
혼자서 애월하다
제주 숙소, 솔트 애월
솔트 애월, 두 번째 방문이다. 혼자 묶을 때 꿀의 방이라고 생각한다. 넓은 책상과 이층 침대. 사각 프레임으로 나뉜 바다뷰의 창문과 자연을 사랑하는 숙소의 철학이 담긴 어메니티.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숨의 이슈로 이 작고 높은 방이 자주 두려웠다. 이층 침대에 누우면 가슴이 천장에 닿을 듯이 뛰었다. 다음 날 아침 동네를 걷다가 약국에 들러 심신 안정제를 하나 사 먹었으나, 도움이 안됐다. 기적처럼 발견한 북카페의 책과 맥주가 약보다 나았다. 그렇게 하루를 견뎠다... .
숨의 바다들
금릉과 협재
바다에 눕고 싶어 제주로 왔다. 김민정의 시집을 사서, 귤들과 카메라, 에일 맥주와 내가 만든 꽃 블랭킷을 챙겨서 바다 곁에 누었다. 태양이 뜨거울수록 헐벗고 누웠다. 누우면 나았다. 마치 숨의 여신들처럼 내게 숨을 길어 올려 주는 듯했다.. 여기 모두가 이 바다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누린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활짝 열리는 것 같았다. 늘 나란 사람이 모두에게 고른 영향력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팀장이 된 후로 더 그랬던 거 같다. 팀원들, 동생들의 안색을 살피고 마음을 묻고 헝클어진 맥락을 선하게 의미하는 데에 공들였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조언하기 전까지.
너의 마음이 고르고 평온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
낮의 책
밤의 칵테일
낮에는 애월의 책방이다에서 놀았다. 책들의 큐레이션이 아름다웠다. 책방 지기의 예술적인 미적 취향이 한데 어우러진 작은 서점만의 아우라가 좋았다. 밤에는 마틸다에서 마셨다. 제주 여행 내내 매일 밤 들렀다. 마틸다는 밤마다 웨이팅이 길었다. 나처럼 혼자 오는 여행자도 흔했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바테이블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청년 여행자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참았다. 걸어볼걸. 사진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거다. 첫날에는 모히또, 둘째 날은 진토닉, 셋째날은 와인을 마셨는데, 나를 왼 주인 언니가 알은체를 했다. 오늘도 왔네, 오늘은 와인을 마시네. 숨의 여행 중에 반가운 환대였다.
제주의 바다 곁에 누워 누린 고른 숨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오기 위해 짐을 챙겼다. 공항에 들어선 순간 다시 시작된 나와의 한판 대결, 패배한다면 섬에 남을 것이다.
제주에서 돌아와 천천히 날 아프게 하는 것들의 정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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