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젤이의 다섯 살을 꺼내 보는 일은 다섯 살 루다를 바라보다 시작됐다. 매일 빛나는 눈동자로 내 곁을 맴도는 루다를 물고 빠는 요즘.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는 손가락 마디를 확인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에 “루다야 천천히 커야 돼, 알았지?” 라고 당부하는 요즘.
별안간 한젤이의 다섯 살이 궁금했다.
루다와 알콩달콩 애정신을 펼칠 때마다 어디선가 집중해 책을 읽거나 리코더를 불고 있는 한젤이는 기특하게 자라 이제 10살이 된다. 기특한 한젤이. '기특'에 갇혀 지내는 건 아닐까, 조용히 한젤이 곁으로 가 동생에게 하듯 꼬옥 안아주었다. 입꼬리가 귀에 걸려 천진하게 웃는다.
'기특하다'는 말은 동생처럼 굴지 않는다는 말과 결이 같다. 어른스럽게, 형답게 행동해야 듣는 이 말은 ‘어른’을 위한 칭찬이다. 어린이는 막상 기특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 아니, 되레 억울할 지도 모른다.
한젤이에겐 늘 요구하고 다그쳤던 것 같다.
“이 정도는 스스로 해야 되지 않아?”
한젤이가 네 살 때부터 함께 살았고, 얼마 안 돼 동생이 태어났다. 할머니와 붙어 지내며 한 없이 아기처럼 구는 게 못마땅했으니까. 나는 최대한 바랐다. 뭐든 스스로 하기를. 얼굴에 물 닿는 걸 싫어했는데 일부러 물을 뚝뚝 떨어뜨려가며 씻겼으니까.
한젤이와 내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단 생각이 들 무렵,
아들이 이렇게 어려워도 되나 싶을 때쯤 둘이서 제주도로 떠났다. 마침 회사도 그만 뒀겠다, 동생은 두 달 뒤에 태어나겠다, 우리 둘만의 시간은 평생 지금 뿐일 것 같아 서둘렀다.
애월의 고즈넉한 팬션의 소박한 2층 방에 여장을 풀었다.
매일 같이 협재 해수욕장에 갔다. 쌀쌀한 봄바람도 상관없이 한젤이는 행복해 보였다. 세상을 다 가진 것도 같고 세상에서 제일 크게 웃는 것도 같고 하늘을 나는 것도 같은 표정으로 매일 뛰었다.
물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약속은 번번이 지키지 못했다. 손에 작은 컵 하나만 쥐어주면 혼자 노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휑한 바다에 꼬마 혼자 흠뻑 젖어 노는 모습에 지나는 사람들이 놀랐다. 나는 그저 바라봤다. 음악을 듣고 간간이 책을 읽었다.
아주 편하게 그 시간을 즐기진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이런 저런 걱정으로 아이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방팔방 뛰노는 한젤이를 바라보는 일도 난 좋았다.
시간에 쫓기지 않았고 피곤에 지치는 일도 없었으니까 당연했다.
그저 바라보고 사랑하는 엄마로 충실해도 충분했다.
아들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밝았고 하늘은 맑았다.
다행이다. 우리에게 그 시간이 있어 참 다행이다. 만삭의 초보운전자인 나의 결정을 반대한 다양한 목소리에 지지 않고 짐을 꾸려 떠나 정말 다행이다.
한젤이의 다섯 살.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
더 많이 안아주고 더 자세히 설명하고 그저 바라보고 인정해 줄 텐데.
그 때 우리 제주도에서처럼.
보통의 후회처럼 앞으로 잘하면 돼 따위 협의가 안 되는 거였다. 아예 불가능한 얘기다. 한젤이의 다섯 살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다만, 아들의 열 살을 열두 살을 또 스무 살을 그리워하면서 후회하지 않도록 이제라도 제대로 살자는 쪽으로 생각이 방향을 튼다.
오늘이 삶의 한 가운데임을 기억하자고. 다행인 순간이 일상 켜켜이 스며들도록 오직 지금을 성실하게 사는 일 말고는 예정된 후회를 막을 길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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