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ilm Scene

꿈 좇는 평범한 청춘 담은 <우린 액션배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4년 서울액션스쿨 8기생을 모집하기 위해 열린 오디션 현장. 오직 액션배우가 되겠다는 한 가지 꿈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드러낼 건 근육밖에 없는 미용사 출신 권투선수, 우스꽝스럽게 말타는 흉내를 낼 뿐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백수건달, 발차기는 물론 몸으로 하는 모든 게 어색하지만 잘 생겨서 점수를 딴 꽃미남, 그리고 하릴없이 하루 다섯 편씩 비디오만 보다가 주성치 같은 코믹액션영화 감독이 되고자 '액션'을 직접 배우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온 정병길 감독까지.

비주류 인생에서도 맨 가장자리쯤에 있을 법한 그렇고 그런 남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당시 오디션의 심사위원이었던 김원중 감독은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8기 오디션 볼 때 아주 꼴통들 많았죠."

사실 나는 스턴트맨에 대해서 '배우가 되고 싶지만 끼가 부족하거나, 몸 하나 싱싱한 것 빼고는 볼 것 없는 지독한 '마초'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저 잘 만들어낸 몸으로 위험천만한 스턴트를 거뜬히 해내는, 아니 해내기를 자처한 아슬아슬한 '인생들'이라고 말이다.

나처럼 무지한 이들에게 고함치듯, 정병길 감독은 액션스쿨 8기 오디션에 합격한 5명의 생활을 1년 가깝게 좇아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그것이 바로 <우린 액션배우다>.

엑스트라 인생, 이렇게 유쾌해도 되는 거니?

<괴물>에서 한강으로 떨어지는 아찔한 한 '점' 연기를 해낸 권귀덕(29). 이소룡 같은 액션 배우를 꿈꾸지만 170센티미터에 54㎏ 겸손한 신체조건을 갖춘 전세진(31), <쩐의 전쟁>에서 액션 연기마저 훌륭히 소화한 박신양 때문에 민망한 스탠딩 대역이 되고만 신성일(30). <가위손>에 푹 빠져 미용사가 됐던 전직 권투선수 출신 곽진석(28). 십자인대의 파열로 액션배우의 꿈을 접고 지금은 아이돌 스타를 꿈꾸는 권문철(24).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섯 사내들이 몸담은 세상은 녹록하지 않다. 차가 전복되는 초긴장의 촬영 전에도 헬멧 잠금장치를 확인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행여 촬영 중에 팔이 으스러져도 "죄송합니다"하며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한다. 무릎에 피멍이 들 때까지 구르고 내쳐지길 반복해도, 상대배우 실수로 어금니가 빠져도, 뺨치기 세례에 자칫 감정이 상하더라도 티낼 수 없다. 그들은 '액션배우'라는 이름 아래 스턴트를 하지만, 동시에 현장세트를 정비하고 관리하는 제 1의 '스태프'이면서, '대역'이거나 '엑스트라'일 뿐이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청춘들이 세상을 마주하는 태도는 어둡고 칙칙할 것이란 오해를 거침없이 차버린다. <네 멋대로 해라>의 고복수가 당장 수술을 해도 살까 말까한 뇌종양 치료를 미루고 목숨을 건 스턴트를 하면서 보여줬던 그 웃음처럼, 언제 어디서나 호방한 웃음을 달고 산다. 개그맨 뺨치는 입담으로 술자리를 압도하고, 사랑을 찾아 헤매고 여행을 꿈꾸는 나와 닮은 이 땅의 유쾌한 청춘들의 모습이다.

36명으로 시작한 액션 스쿨 8기 중에 현재 권귀덕 단 1명만이 스턴트 일을 계속 하고 있지만, 남은 네 명이 꿈을 접거나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각자 뜻한 바대로 홍대 앞에 '바'를 차려 장사를 시작했고,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가수의 꿈을 키우며 세상과 즐겁게 호흡하며 한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액션배우의 꿈이 또 다른 길에서 더 크게 펼쳐질 것이라 믿음에 묵직한 무게를 싣는다.

100여편의 출연작, 그리고 한편의 진짜 인생

작년 가을 개봉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는 타란티노가 그의 전작에 대역을 도맡은 어느 스턴트우먼을 위해 캐릭터를 만들고 그녀가 직접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이다. 그 결과 기막힌 자동차 추격신 등 스릴 넘치는 액션장면들이 완벽히 만들어졌다. 그녀는 진정한 스턴트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며, 액션배우로서 영화 속 진짜 주인공이 되었다.

<우린 액션 배우다>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꼴통'들은 한국영화의 거의 모든 액션을 섭렵해 출연작만 무려 100여 편에 달한다. 그러나 주연배우를 대신한 대역이나 깡패·건달의 무리 중 하나로 스쳐 지나갈 뿐 이름도 얼굴도 뚜렷이 기억할 수 없다. 2008년 정병길 감독은 한국의 쿠엔틴 타란티노가 되어 액션 배우의 진정한 스턴트를 만천하에 알렸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이렇게 응원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스턴트맨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액.션.배.우.다."




(추신: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