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기 쉬운 자식이 있을까마는
아들 너는 어렵다.
아침부터 눈물 훌쩍이며 전화가 왔다.
엄마.. 흑흑
엄마... 흑흑
응 한젤아 왜? 말해봐 왜? 무슨일 있어?
만원 지하철 안에서 최대한 상냥하고 부드럽게 대꾸했지만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계속 흐느끼기만 하길래 "한젤아 엄마가 일찍 갈게, 알았지?" 하고 끊고는 다시 출근길 긴장 모드로 전환했지만 당연히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른 출근 중이니 30분이라도 이른 퇴근을 제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단축 근무 중이라 눈치가 보이겠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어젯밤 일이 걸렸다. 아들 마음에 여진이 남았나 싶어 걱정이었다.
어젯밤 한젤의 폭풍 오열을 보았다. 발단은 준비물을 못 챙긴 한젤을 여자 아이 둘이 수업 과정에서 따돌린 모양이었다. "넌 준비물 없으니까 하지 마"에서 시작해 "너 한 것도 없으니까 먹지도 마" 뭐 이런 식의 순서로.
한 달에 한 번 담임 선생님 쉬는 날은 같은 반 아이 엄마가 반나절 수업을 진행한다. 루하 엄마가 준비한 수업 내용이 쿠키 만들기였다. 요리에는 별 뜻 없는 나에게 당연히 챙겨날라는 준비물 들이 있을리 만무했다. 반죽 밀대도, 박력분도 우리 집엔 없다. 빈손으로 덜렁덜렁 갔을 한젤이가 잠깐 신경 쓰였지만 준비물 없는 애가 어디 한젤뿐일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싶었다.
늦은 퇴근 후에 늦은 저녁밥을 입 안에 구겨 넣으며 무심하게 "오늘 재미있었니?" 툭 던진 말에 입술을 씰룩 거리길래 이상하다 싶어 한 번 더 묻는데 세상에 왈칵 터지는 거다. 엉엉엉.
덩치가 커져 품에서 훌쩍 벗어나는 아들. 서러웠는지 온 몸을 떨며 우는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토닥토닥 한 편 되어 주기 뿐.
"세상에, 나쁘다. 얼마나 속상했어. 엄마가 혼내줘야겠다. 엄마가 꼭 얘기할게. 알았지? 힘들었어 아들. 얼마나 마음이 아팠어 아들."
그리고 오늘 아침
다시 우는 목소리를 들은 거다.
10살이다. 7살 아니다. 물론 만으로는 8살이다.
태어난 지 8년 됐으니, 내가 바라는 10살의 모습은 2년 후 만나게 될지 모른다. 나의 기대는 성미만큼 급해서 아들도 2년 따위 건너 뛰어 어서 12살 같은 의젓함을 보여주길 바란다. 바로 이 점이 아들 키우는 일을 가장 어렵게 하는 지도 모른다.
회사에는 급히 허락을 받고 넘치는 업무를 무 자르듯 끊고 얼추 시간을 맞췄다. 부랴부랴 뛰어 동 앞에 서자마자 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예상보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걸어오더라. 기특해라. 가까이 왔을 때 사진을 찰칵 찍었다. 카메라 소리에 돌아본 아들이 소리쳤다.
"엄마!!"
세상에, 볼에 뽀뽀를 열 번 해주고 엉딩이 토닥토닥.
매일 이런 날들이라면 좋겠다는 비밀은 가슴 안 구석에 넣고 사이좋게 손잡고 집으로 올라 왔다.
혼자였다면,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간식 챙겨먹고 수영복 갈아입고 나에게 전화했을 것이다. 떨리는 음성에는 불안이 가득했을 거다. 1-2주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싶어 기다렸는데... 깜깜 무소식. 1-2년이 지나야 괜찮아 지는게 아닐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따뜻한 간식으로 챙겨 주고 싶었다. 시간이 없으니 거한 건 어렵고 다행히 하나 남은 한살림 핫도그 데워주고, 사과즙도 예쁜 유리잔에 따라줬다. 양껏 먹고 밝은 얼굴로 집을 나섰다.
"엄마 집에 있어야 돼 알았지?"
나란 엄마는 인내심도 바닥이라 '몇 번 물어봐! 알았다고 했지?!!' 라고 대꾸할 만한데 오늘은 뾰족하게 굴고 싶지가 않다. 저 세상 걱정 없는 아들 얼굴이 얼마나 귀한 지 잘 알기에, 오늘은 최대한 나이스한 엄마 이고 싶다. 일하는 엄마여서 미안하지만 그래서 더 귀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