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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하루마다

빛과 빚

 

 

울 아빠가 여든 살이 된다. 엄빠 집에 들러 모시고 약속 장소로 향하기로 한 날이다. 엄빠는 이미 코트까지 걸치고 섰는데 약속 2시간 30분 전이다.

 

엄마, 지금 출발하면 일러. 조금 천천히 나서자.
그래 알았어. 아침은 먹었니?

 

순식간에 된장국과 두 종류의 폭 익은 김치와 콩자반과 구운 김과 양념장이 차려진다.

 

뭐 줄 게 없네.
엄마 충분해. 진짜 맛있어.

 

엄빠는 거의 뛰어다니면서 반찬을 꺼내고 생강차를 타주고 따뜻한 물을 내주고 …. 아, 시간을 거스를 수 있구나. 과거 그대로를 경험하는 신비 체험 같다. 이만큼 고맙게 맛있게 먹지는 못했지만.

 

아빠 내 마음에 아빠는 60살 정도 같아. 근데 벌써 80이 되셨어요. 
그러게 말이다.
아빠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80대 중에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선택이 쉬우라고 10년씩 나눠 읊는데 꽤 한참이다.

 

너네들 데리고 설악산도 가고 여행 다닐 때 제일 좋았지.

 

나 꼬꼬마 때 해병대 출신 어깨가 떡 벌어지고 근육질의 늠름한 아빠가 날 엎고 흔들바위까지 한걸음에 뛰어 올라가던 시절. 

 

분명 행복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짧은 대답 후에 설움의 회고가 시작된다. 회사원 시절 번번이 승진 고배를 마시게 되자 인사 부장을 찾아 소란을 피운 시절의 얘길 들려준다. 이 새끼 저 새끼들이 여럿 등장했고 "너희는 모르겠지만 아빠가 혼자서 많이 울었어"라고. 많이 울던 아빠의 한 시절 얘길 듣는구나. 귀한 날이구나.

 

그 분들이 아빠에게만 나쁘게 한 건 아닐 거예요.
그래 맞아.

 

용서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 마음의 소란을 지우는 깨끗한 방법이라고. 결국 나도 아빠와 엄마를 닮을 텐데 … 이 두 분이 지금의 당신을, 지나온 당신을 가득 환대해 주길 바라게 된다.

 

아득한 여든 살에 스스로를 환대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가능한 일일까. 무엇이 필요할까. 여든의 나를 환대하기 위해, 오늘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뭘까.

 

 

 

눈이 흐릿하고 귀가 먹먹한 아빠는 내가 만든 티매트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디자인을 선택했다. 동백 같은 붉은 그리고 벚꽃 같은 화사한. 곁의 엄마는 다이소에서도 이런 거 팔던데… 한다. 아오, 우리 엄마.

 

 

 

아빠가 주무시는 방 머리맡에는 아빠의 로또존이 마련돼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 밑에도 이주의 복권이 고이 접혀 앉혀져 있다.

 

내 딸 빚 갚아줘야지, 아빠가 요즘 가슴이 답답해.
아빠 괜찮아… 내가 잘하고 있어.

 

아빠 여든 마음에 나란 빛이 빚이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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