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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하루마다

산책

 

 

이제는 정량이 돼버린 쇼쿠사이 한 캔을 마셨다. 더부룩했고 조금 지쳤고 취했으니 걷고 싶었다. 루다에게 걷자 했더니 따라나선다. 날 위한 걸까 원하는 걸까. 원하는 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루다와 손가락 하나를 걸고 걷다가 깍지를 끼고 걸었다. 어쩌면 반년 아니 한 달 아니 바로 내일이면 어색해질지 모를 우리의 스킨십. 서먹해지기 전에 이미 나만큼 키자란 아들의 손에 깍지를 끼는 용기를 낸거다. 저항 없이 꼭 잡지도 덜 잡지도 않는 평균의 힘을 부리는 아들의 따뜻한 손을 잡고 이말 저말 나눴다. 

 

우와, 달이 예쁘다 엄마. 

그렇네. 예쁘다 루다야. 

 

때로 무너지고 때로 힘에 부치고 때로 행복한데 대체로 괴로운 감정에 머무는 요즘. 삶이 이런 간가 하고 묻는다. 여기서 괴로움이란 그러니까 내 감정의 소용돌이가 아니라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대로 바라볼 때 가지는 묵직함과 닮은 것이다. 여기저기 소란한 일들을 가만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제시하기보다 가만히 포함시키는 노력에 가까운 것이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 괴로움을  가까스로 허용하는 가라앉는 시절 가운데 가장 설레고 가벼운 시간이지 않았나 싶어서, 아들에게 받기만 하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받는 사람, 내가 주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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