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과 윤정희 그리고 ‘시’ .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창동감독 작품에 대한 무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겠지만 웬일인지 1960년대 대활약 한, 이제는 노인이 된 배우 윤정희에게도 깊은 호감이 간다.
윤정희는 배우로서의 자긍심과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지적이고 성실한 배우의 지위를 구축했다. <안개> <분례기> <석화촌> 등 작품 선정에도 워낙 신중하여 그녀의 출연작은 한국영화의 맥을 잇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 1970년대 초반까지 활동을 유지하던 윤정희는 1973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영화사 '196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 중에)
감히 여배우의 삶을 논할 순 없겠다. 다만 여성으로서 자신의 분야에 자긍심을 갖고 한결 몰입하는 것이 특히 이 땅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가 대충 가늠해 본다.
대중의 인기(인정)를 한 몸에 받는 위치에서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는데 또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녀 스스로 어떤 그릇이 되고자 큰 줄기의 빛이 반짝였을 그때에 감히 유학길에 올랐을까. 그리고 <시>로 다시 펼쳐 보이는 연기는 어떤 색일까.
나는 윤정희라는 배우가 실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앞으로도 내가 알 수 있는 건 <시>를 통해 볼 그녀의 연기, 눈빛, 어쩌면 연륜까지가 전부 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내 미래를 비춰보고자 함은 <시>의 기회가 비단 거저 온 것은 아닐 거라는 예감 때문이다.
누구보다 깊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비우고 채우는 삶이 있진 않았을까. 자신의 분야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숨은 노력을 깃들이진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노년에 더욱 빛나는 여성의 모습을 <시>를 통해 입증해 주진 않을까.
<시>의 정갈한 타이틀 로고는 이창동감독의 필체다. 아직 못 봤지만 웬일인지 영화와 꼭 맞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더해 주인공 윤정희의 캐스팅 또한 이창동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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