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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감동 '겨울왕국'을 보았다 ​ ​ ​ ​ ​ ​ ​ ​ ​ ​ 2016년 1월 15일. Real ‘겨울왕국’을 보았다. 설경을 기대했지만 기대 이상일 줄이야. 한라산 윗세오름까지는 두 번이 전부인데 평소 산과 친하지 않은 내 눈에도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해 더 자주 오겠다고 다짐하게 되더라. 연례 행사가 되면 좋겠고 아이들이 좀 더 크면 함께 자주 걷고 싶다. 문득 산을 잘 모르는 주제지만, 산을 타는 일이란 기꺼이 고통을 견디기 위함이 아닐까, 고통에 익숙해 지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좋아하기란 스스로 낮추어 ‘겸손’하지 않으면 어렵겠다고. 오르막을 걷다가 걷다가 보면 한없이 작고 나약한 나와 마주하게 되는데 결국 날 이끌고 가는 건 정신과 의지이지 않나. 초라한 네 모습을 보고 이 고통을 감내하라는 산의..
새겨듣는 일 흔치않은 일 2015. 9. London 새겨 드는 일이 흔치 않아 졌다. 그건 내 안의 '잣대'가 덩치를 키워서 일 거다. 들리는 얘기들에게 넌 틀려, 넌 맞고, 넌 집어치울래 따위의 판단이 쏟아진다. 내 가슴을 때리는 말과 치침이 되는 가르침... 방향타가 되어줄 조언 하나 구하기 어렵다. 모두 다 나 때문이다. '내가 틀렸구나. 맞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알았구나. 저 사람 실속없는 줄 알았더니 나보다 더 나은 분이구나. 나도 몰랐던 걸 알고 있구나.' 굳건하다고 믿은 판단, 결정들이 산산이 조각 나는 순간이 잦아져야 한다. 자꾸 고개를 치켜 드는 내 안의 '에고'가 고개를 숙이도록. 나란 인간이 너와 닿을 만큼 확장될 유일한 길일 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훈련해 놓지 않으면 꼰대가 돼 주변인을 괴롭히고 더 나이가 ..
배탈 울 아들... 한번씩 배가 아프면 오열과 구토로 이어진다. 아마 3-4살때부터 수시로 그랬다. 대신 아파줄 수 없으니 답답하고 안타깝다가 징징 거리면 몸도 힘들고 때론 화도 난다. 어제도 아프다길래 부리나케 갔더니 울고 있다. 얼른 안고 집으로 가는데 달리는 차 안에서 오열하다 구토했다. 그리곤 소강상태. 다행이다 싶었는데 새벽 4시경에 깨 다시 아프다며 울었다. 오랜만에 재미난 꿈을 꾸고 있던 차라 아쉬웠지만 일어나 간호했다. 아이란 특히 아플 때 고작 나란 존재를 세상의 전부 쯤으로 여긴다. 엄마 엄마 목놓아 쉼 없이 부른다. 겨우 나인데... 널 낳아서 세상의 전부가 되는 경험을 한다는 생각이 이어지더라. 난 왜 이리 엄마인 내 모습에 자신이 없는걸까. 복잡한 마음에도 묵직한 책임감이 올라와 따뜻한..
우리는 방학 2015. 여름 이제야 날짜를 꼽아본다. 이 주쯤 됐을까. 그리움엔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 주. 기다림의 한계치. 두 밤만 지나면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혼자라 귀했을 일요일날에 기꺼이 청소를 감행했다. 서걱거리는 발바닥의 느낌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아들들에게 뽀송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픈 엄마의 마음으로. 기꺼이. 설거지 한 번, 청소기 두 번, 빨래는 네 번 돌렸다. 그 중 두 번이 이불 커버였다. 그 외 각종 서랍 옷장 주방 곳곳 야무지게 진행 된 대청소였다. 폭염이었다. 우리집 거실엔 에어컨이 없다. 땀을 ‘비오듯’ 흘렸다란 진부한 표현을 굳이 쓰고 싶지 않지만 이보다 더 정확할 순 없다. 그러니 기꺼운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문득 이 '기꺼운' 상태가 얼마나 값진가에 대해서 생..
잊혀진 것처럼 지내고 있었다 잊혔을리 없다. 기대도 않는다. 다만 요즘 잠잠했다. 마음으로 전하는 침묵의 안부도 꿈속의 조우도 뜸했다. 잊혀진 것처럼 잊은 채 지냈다. 충분한 기억으로 남았음이 얼마나 다행이냐는, 여행집의 한 구절을 읽다 그만 또 떠올렸다. 그렇게 밤을 지새면 안 될 것 같아 애써 뒤척여 애써 선 잠에 들다 깼다. 평소와는 다르게 무심히 켠 라디오에서 함께 듣던 노래가 흘렀다. 겸험의 '기억'이란 존재보다 강하다. 더 나은 나였다면 그만큼 아픈 엔딩은 피했을텐데. 그리움과 아쉬움은 추억과 같은 말. 절절했던 그 시간의 보상은 기억 뿐일까.
마법에 걸린듯 취하는 술 언제부터 모히또의 마법에 걸렸을까. 아마 난... 왠지 모를 먼 타국의 생경한 이름에 끌려 첫눈에 후한 점수를 주었고, 달콤쌉사름한 맛에 전부를 내 주었는지 모른다. 그리곤 그저 모히또라면 좋아서 마시고 또 마셨다. 최근 서글서글한 백주부가 흑설탕을 큰 스푼 담아 깻잎과 레몬을 으깨 소주와 사이다를 섞어 만든 모히또를 소개했다. 그 뒤로 내 머리가 푹 담겨도 넉넉하게 남을 만한 우리 집 유리 대접엔 깻잎 모히또가 제조 돼 있다. 가짜 모히또도 제법 그 맛이 괜찮다. 1930년대 남미 쿠바의 칵테일바 메뉴판에 처음 그 이름이 소개됐다는 모히또는, 당시 쓰인 'mojo'가 어원이 된다. '마법에 걸린 듯'이란 뜻의 'mojo' 에서 마법에 걸린 듯 취하는 술 'mojito'로 변신한 셈이다. 기쁨과 광란이 ..
들에 핀 꽃, 기화 누나 요즘 어때. 계속 술이 땡겨. 뭐가 힘든가. 왜 어떤데. 그냥 계속 차분해 지지가 않고 마음이 뒤숭숭해. 뭐랄까... 바람 나고 싶은 기분 같은거. ... 누나 원래 그랬자나. ... 나름 오래된 관계인데 처음과 다름 없이 수시로 안부 묻고 만나고 밥먹고 술마시는 우리. 이 관계가 편안하게 유지되는 건 우선, 이 아이가 날 많이 포용해 주기 때문이고. 오늘 느낀 또 하나는. 처음부터 줄곧 솔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말이든 스스럼 없이 얘기할 수 있는 관계 어떤 개소리든 진지하게 듣고 너가 틀렸어 정신차려 미쳤구나 하지 않고 그저 서로의 내일을 미래를 현실과 꿈을 지긋이 응원해 주는 관계여서 가능하단 생각을 했다. 너 없음 어쩔 뻔 했니.
행복의 기원 2006. London 버트런드 러셀도 경계하라는 '쾌락'을 인간의 진화에 필요한 유전적 요소라고 얘기하는 을 손에 잡기 무섭게 읽어 내렸다. 행복을 좀 다르게 보자는 관점이 좋았고 순식간에 빨려들었다. "익숙한 철학의 안경을 벗고, 진화론적인 렌즈로 행복(쾌감)의 본질을 좀 더 깊게 들여다 보게 되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행복은 사회적 동물에게 필요했던 생존 장치이다." 학생 시절 학교 담을 넘어 친구네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돌아오곤 했다. 치마자락을 휘날리며 담벽락을 뛰어 내리는 동시에 적발돼 혼쭐이 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왜냐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낄낄 '행복'했으니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매 순간마다 겁이 없고 어떤 대가보다는 즐거움을 따른 그간의 나의 행보에 '참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