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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탄 소년 다르덴, 그들의 영화는 적어도 내겐 영화가 아니었다.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하기엔 사실과 닮았고, 그늘진 삶을 애써 살아내는 주인공의 모습은 세상의 부조리함을 바로 보는 창이 되곤 했다. 그들이 고집스럽게 사용하지 않은 영화 속 음악이 에서 들려올 때,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가 희망의 다른 말로 전해져 감상을 방해할 때 아, 그들도 변했구나 싶어 아쉬웠다. 그럼에도 주인공 소년 '시릴'이 보이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향한 무한한 이해와 변명은, 시릴의 위탁모 '사만다'가 전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내리 사랑은 영화의 중심을 이뤄 가슴을 친다. 비난하지 않는 것은 믿음, 신의, 어쩌면 사랑과 같은 말이 아닐까. 어떤 깨달음의 울림이 깊다. 어쩌면, 많은 평자들이 얘기한대로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이번 작품을..
돌고래 세마리 심난한 채 잠들었는데 아름다운 꿈을 꿨다. 허름한 숙소 화장실로 돌고래 세 마리가 찾아왔다. 반짝이는 청색의, 한없이 맨드라운 얼굴을 쓰다듬으며 그들과 물 위를 함께 날았다. 모두 몸집이 작은 아기 돌고래들이었고 나에게 더 없이 살가웠다. 그 중 한 마리가 우리말로 “바다에 잠시 다녀올게.” 했다. 셋이 줄지어 떠난 뒤 바라본 창밖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파리의 밤이었다. 이렇게 살아지는 건가보다 한다. 요즘은 특별한 걱정 없이 매일 밤 짧게나마 나에게 쏟을 시간이 아니 정력이 있기만을 바랄 뿐 다른 건 없다. 다만 시간이 어서 흘러 내일이 오고 또 다음날이 돼 나이를 먹고 중년이 되어 홀연히 훌쩍 비밀처럼 떠나도 탈 날 것이 없는 미래의 어떤 날을 그린다. 간혹 심난한 것은 마주치는 지금의 내 모습 때..
입춘 지나 진짜 겨울 2012. 2. 입춘이 지나 진짜 겨울을 보았다. 춘천사의 꽁꽁 언 계곡물과 녹을 채비도 마다하고 만끽하라는 듯 지천에 널린 하얀 눈을 밟았다. 춘천 시내에서는 봄 향이 코끝에 걸리더니, 그 산속은 같은 하루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찬바람이 매서웠다. 태어나 이토록 많은 눈밭을 걸어본 적 없는 아기가 제일 신나 껑충껑충 뛰놀았고, 그 뒤를 종종 걸음으로 쫓은 난 추웠지만 아름다운 겨울의 풍경에 빠져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이었던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가난한 내가 가진 것들을 나열한 메모가 보인다. 선뜻, 주말 산책을 지휘한 착한 남편과 쑥쑥 자라주는 감각적인 아들. 드디어 익숙해진 안락한 나의 집과 언제든 따뜻한 물이 흐르는 고마운 싱크대. 건강하신 양가 부모님과 아낌없이 사랑 주는 나..
탐나노라, 나탈리와 애쉬튼의 러브스토리 이 영화가 보고 싶었던 이유는 순전히 두 배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래도 나탈리 포트만과 애쉬튼 커처의 19금 로맨틱코미디 영화라면 후회하진 않을 것 같았다. 보고난 지금, 후회는 없다. 더해 영화의 흥행 부진은 ‘친구와 연인사이’라는 촌스런 한국말 제목 때문이란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시간차를 두고 이뤄지는 우연한 두 번의 마주침. 이어지는 돌발적인 모닝 섹스 후 짬 시간마다 즐거운 섹스를 즐기는 것에 합의한 엠마와 아담. 이들은 애정의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적당한 규칙을 정해 놓긴 하지만, 조건 없이 이유 없이 자유롭게(No Strings Attached) 친구를 가장한 섹스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잇는다. 결국 어찌할 수 없이 인정하게 될 진한 사랑이 될 거면서. 꽤 도발적인 줄거리에 비해 실..
다섯살 2012. 1. 다섯 살. 말 수가 늘면서 뭐랄까 귀염이 덜해진 느낌이다. 흐뭇이 바라보는 나에게 “엄마 다시 부엌으로 가세요” 라거나 목욕이 끝날 무렵 “엄마 이제 나가 있어요” 식으로 엄마 떼어내기도 부쩍 늘었다. 밤 10시면 까무룩 잠들던게 11시가 훌쩍 넘어서까지 쌩쌩하다. 난 자고 싶은데 지는 놀고 싶으니 밤마다 티격태격 한바탕이다. 아기 티 벗는 모습이 반갑기도 한데 한편 허전하다. 정말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본체만체 할 날이 머지않은걸까.
사진과 드로잉: 평행선 사진은, 성찰을 드로잉하는 순간적인 행위이다. 1992. 4. 27. 앙리 까르띠에브레송
Christmas 2011 2011. 12. 24. Mery Christmas 아무런 기다림도 설렘도 없는 이번 성탄 휴일에 오늘의 평온한 아침이 축복만 같다. 창밖이 온통 하얘 기분이 들뜬 탓도 있지만, 얼른 뛰어나가 풍경 사진에 집중하고 싶단 생각도 들지만, 소싯적 로맨틱한 날이라고 기뻐한 12. 24일의 아무렇지 않은 32살의 아침을 짧게나마 적고 싶어 졌다. 행복을 자주 언급하는 게 유치해 보인다는 건 알지만 이 기분은 정말이지 '행복'인 것 같다. 거실에 울리는 비틀즈의 헤이 주드와 우유 한 잔 밤식빵과 제법 쌀쌀한 거실 공기, 한 움큼 흰 눈모자를 뒤집어쓴 단지 내 자동차들, 저쪽 방에서 책을 읽는 당신까지 ...
당신 종종 즐겨먹던 사골국이 먹고 싶어 아빠에게 전화를 하고야 말았다. 결혼해 아들까지 둔 내가, 마치 수험생이나 된 듯이 아빠 족탕이 먹고 싶어요. 라고 했다. 끓이는 데만 족히 하루는 걸리는 번거로운 작업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었다. 직접 두 팔 걷어 해낼 엄두는 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핏물을 빼고도 한번 빠르게 끓여 이물질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다시 고아내는 긴긴 여정. 정성스런 마음이 바탕이 돼야 깔끔하고 깊은 맛으로 완성되는될 거다. 천성이 깔끔한 아빠표 국은 그래서 언제나 최고였다. 아빠는 손수 간장양념장을 만들고 국과 밥도 수북이 퍼 나를 식탁에 앉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내 두 발바닥을 쓱쓱 주무르고 계셨다. 밥 먹는 서른 넘은 딸의 발을. 아빠와는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이 된 뒤로 급격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