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 삶에서 저의 디폴트 값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대학교 1학년 때 그냥 아무것도 없는 그때의 제가 디폴트라고 생각하거든요. 돈도 없고 잘 모르고 가진 거라고는 그냥 약간의 자신감밖에 없는 그 상태가 저의 디폴트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머지는 그냥 운 좋게 얻어걸린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이게 (평가 또는 지위) 너무 커지면 본능적으로 디폴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최성운의 사고실험, 조수용 인타뷰 중에서
이 인터뷰를 내리 연속 세 번을 봤다. 일의 모든 순간을 좋아함으로 채운 사람의 따뜻한 집요함을 듣다가 모든 것이 0으로 수렴되는 어른의 지혜를 배웠다. 그리고 인생에서 한 번도 질문해 본 적이 없는 '나의 디폴트값'을 생각해 보느라 한참을 헤맸다.
<헤어질 결심> 속 대사처럼 "내 세계는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반복해 되뇐 한 해를 보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붕괴됐다. 어떤 종말처럼 희망이 없는 상태일 줄만 알았는데 폐허를 복원하는 기회가 주어진 해이기도 했다. 덕분에 '다시' 시작하는 희망과 고통스러운 행복을 처음 경험했다. 삶이 매 순간 처음인 게 신비롭고 묘해서 기록하길 멈추지 않았다.
헝클어진, 예의 없는, 자유분방한 태도를 가진 나를 아주 큰 그릇의 사람으로 오해한 시간이 길다. 사실은 작고 얕은 그릇이란 걸 사업을 시작하면서 직면했다. 오너의 철학이 사업의 성공 여부를 가른다면 실패는 당연했다. 나의 디폴트값을 원동력 삼아 사유의 메시지를 뾰족하게 다듬다보면 일의 결과가 나란 그릇과 탁 어울리게 빚어지는 때가 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디폴트값은 뭘까.
그저 웃느라 팔자 주름이 깊은 다섯 살 꼬마가 나의 디폴트값이 아닐까. 가진 것이라곤 마냥 기쁜 DNA 정도가 아닐까. 세상에 대한 이해도 없지만 그래서 어떤 분별도 없는 투명한 상태의 나.
어느 날 운 좋게 얻어걸린 것들로 원하는 결과와 마음이 탁 포개지는 날이 오면 "마냥 좋아서 많이 웃던 5살 꼬마가 나의 디폴트 값인 거 같아. 그저 나는 엄마 아빠에게 물려받은 DNA, 큰 노력 없이도 주변을 기쁘게 하는 능력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야.“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해 주자.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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