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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170)
아픈 후에 2015. 4 열이 좀 떨어지니 살 것 같지만 어젯밤 오늘 아침까지 죽을 고비를 맞은 것처럼 괴로웠다. 이러다 정말 죽는 건 아닌가 눈이 머는 건 아닌가 앞뒤 안 맞는 생각에 한번 발이 빠지니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39.3도. 고열이 밤새 날 덮쳤고 머리 몸 목의 각 부위가 분리돼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의 두려움을 느꼈다. 아파 봐야 건강이 중요하단 걸 새삼 느낀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얼마나 불만족스러워했는지. 아파봐야 그 역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안다. 이 또한 가르침인데 이 또한 곧 잊혀진다. 다만, 우리 아이들 품에 안고 빙빙 돌아 침을 잔뜩 묻혀가며 뽀뽀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멀찍이서 바라만 보자니 속상하다. 또 센치해지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 우리 엄마는 내가 '..
힘내세요 유민아빠 어처구니없는 요즘. 무너진 하늘 아래 겨우 버티고 선 그분들과 유민아빠 걱정에 길을 나섰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마른 수건에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많았다. 집회 현장이 익수한 동네 언니들은 돗자리에 청도복숭아까지 준비가 철저했다. 아이들은 흥에 겹다 지쳤고 난 자주 먹먹했다. 뙤약볕 아래서 힘내자는 구호를 소리치는 일은 낭만이 아니다. 나은 오늘도, 나이질 내일도 모두 행동하는 이들에게 지는 빚임을 이제야 안다.
지난 날 2008. 2. Clermont-ferrand 산다는 게 앞으로 쭉쭉 뻗은 길로 슬슬 걸음 되는 줄 알았더니 아니다. 지나온 길 돌아보며 주춤거리는 데도 한움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늘의 보위아래 드넓은 잔디에 덜렁 누워 단꿈에 빠진 겁없던 나날들, 그런 날 특별히 바라봐준 사랑들, 우산 없이 즐긴 예고 없던 빗줄기들, 눈탐으로 충분했던 빈티지한 숍들. 선선한 공기가 주변을 채우는 가을에는 여지없이 그리워 꽁꽁 잠궈놓은 지난 날을 소환한다.
소원이 없다 2013. 9. 놀랄 만큼 휘영청 밝은 달이 팔 뻗음 닿을 듯 가까이에 빛나고 있다. 딱히... 두 손 모아 기도할 거리는 없다. 소원마저 없다니... 쓸쓸한 기분은 몰아내련다. 관점을 디자인 하라는 책도 잃은 마당에 다르게 보자며. 어떤 바람이 없단 건 현재에 대체로 만족한단 뜻도 될 테니까 안타까워 말자며. 꼽아보면 가진 게 많다. 출근하는 5일은 각기 다른 스타일로 계절별 코디가 가능한데다, 수시로 질린 옷을 물려주는 언니가 둘이나 된다. 첫째 유치원비가 살짝 밀려있지만, 곧 월급날이니 괜찮다. 이래저래 지출이 많아 카드 값이 걱정이지만, 그게 걱정이 아닌 적은 없으니... 대수롭지 않다. 누런 코가 질질 흐르긴 해도 아들들이 환절기 감기를 은근하게 이겨내고 있고 뭣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논다...
봄이 가기 전에 2013. 5. 봄이 떠날 채비를 하나보다. 분분히 날리던 꽃잎조차 자취를 감췄다. 온 나무에 연두가 가득하니 누가 뭐래도 여름이 코앞에 섰다. 대단한 무더위가 예고 된. 유난히 반갑지 않은 계절인데 그나마 루다 생일을 꼽으며 기다리고 있다. 기념일 축하파티도 끝나면 아마 아이는 찬 물에 풀어 놓고 난 거의 벗다시피 서성이며 꾸역꾸역 더위와 대결하겠지. 여름 지나 사랑하고 싶은 계절 가을 오니... 괜찮다. 무심히 흐를 앞선 시간을 상상하는 일은 때론 기쁘지만 오늘은 가슴 뻐근하다. 시간이 잔인할 만큼 매정하다 싶어서. 이리도 사람 사정을 안 봐주나 싶어서.
그들도 우리처럼 2006. 9. London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하리라는 기독교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모두 상생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과 제도는 인간의 파괴적인 본능이나 특정 종교의 교리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또다른 측면인 공감과 이성에 바탕을 둬야 할 것이다. 배척받는 이의 처지에서 상상해 보자. 당신은 아무 잘못 없이 남들에게 외면받거나 심지어 폭행까지 당한다. 성별, 인종, 나이, 성적 지향 등이 다르다고 해서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분노할 것이다. 나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면, 내 형제나 친자식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입사 최종면접에서 탈락했을 때 어떤 심정일지 상상해도 좋을 듯하다." -> 한겨레 '혐오를 넘어서는 공감' 중에서 http://www.hani.co.k..
느린 아침의 선물 2013. 3. 흐린 봄날의 연속이다. 다가갈수록 뒤로 물러나는 게 역시 밀당의 대가! 반복의 일상에서 새 계절은 손님처럼 반가운데, 봄이라면 초록이 아쉬운 아파트촌에서 특히 더 귀하다. 이토록 자연이 삶의 일부인데 망각하고 살다 그리울 때만 찾아 나서는 건 아닌지. 온 식구가 늦잠을 잤다. 유치원 버스는 이미 떠났으니 급할 것도 없다. 느긋이 아이 등원 준비 시키고 문 밖을 나서니 새들의 지저귐에 어지러울 지경이다. 우린 아직도 쌀쌀한데 이 봄을 만끽한다는 듯. 무겁게 앉은 회색 하늘 아래서 걔들의 경쾌한 소리가 더딘 봄에 움츠린 날 위로한다.
특별하지 않은 눈 2012. 12. 5. 흰 눈이 펑펑 쏟아진 초겨울의 느낌이 어찌나 생경한지 마치 태어나 처음 겨울을 맞은 듯 멍하게 창밖만 바라봤다. 금세 발목 높이까지 쌓인 눈밭을 거닐고도 싶었지만, 그리할 수 없는 신세라 단념했다. 오후 늦게야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 마중 나가며 감칠맛 나게 눈 위를 걸었는데 그 기분이 또 뭐랄까... 특별하지 않았다. 하얀 눈이 사방에 펼쳐졌는데 이토록 무감할 수 있다니. 나는 자라는 중일까 작아지는 중일까. 문득 그간 의식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은 내 안의 내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