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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170)
가을 ​ ​ 바람결 따라 키큰 나무들이 한방향으로 흔들리는 모습에서 가을이 오는구나 한다. 봄의 설렘 여름의 찬란함으로 버틴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스산한 가을이다. 달뜬 내가 가라앉는 시간. 가을을 탓하며 무거워져도 괜찮은 날들. 안다. 사랑하는 가을은 눈을 깜빡이는 만큼이나 짧을 거란 걸. 멜랑콜리의 시간 동안 저 깊숙한 나와 마주하면 방향 잃은 집시 한명이 보이겠지. 기꺼이 선택한 고립이지만, 가진 힘으로 다시 기대하고 꿈꾸겠지. 가을의 초입에 덧없는 것들을 선택한 시간의 대가를, 그러나 희망을 생각한다. - “사람들은 실로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아니, 많은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이 자신의 소유라고 진심으로 믿기에 그것들과 자신의 경계조차 모호하다. 지금 그 모든 것을 도둑 맞았다고 상상해..
본성 ​ ​ 오직 흐트러지고 제멋대로 살거야. 이런 내가 아름답도록 노력할거야. 사는 이유가 있다면 마음을 다해 마음대로 해 보는 것. 자유에 어떤 이유도 달지 않는 것. 본성대로 사는 것. 스스로 책임지는 것.
아무튼 아침 ​ - 2년 넘게 눈뜨면 떠오르는 다섯가지 감사함을 적는다. 내가 이 짓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파서. 언제쯤 괜찮아질까. 괜찮은 날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까. 블랙미러 그리고 로제타와 함께 한 주말동안 희망 없음, 설명할 수 없는 심연 그리고 가슴을 후비는 비밀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잠을 설치니 다시 아침. 아무튼 굿모닝.
서른 .. 마지막 날의 기록 12월의 마지막 날. 30대의 마지막 날. 오늘도 출근해 자리에 앉았다. 유난히 눈이 부었다. 오늘은 오늘답게 살짝 들떴지만 내일은 첫 날이니 가만가만히 읽거나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2018년은 런던에서 시작해 화정에서 끝난다. 어디든 나는 그대로의 나여서 때론 치열하고 가끔 헤매지만 또 긍정한다. 부족한 나여서 바랄 게 없다. 이런 모순도 제법 내 말로 설명할 수 있다니 한 때는 어떤 포기의 말 같아 주저하더니 마흔 앞에서 인정하며 웃는다. 진심이 되었구나. 여러 진심들을 좀 더 모아보기로 한다. 진심으로 마흔을 맞듯 진심만을 안은 채로 죽음도 맞고 싶다고 생각한다. 여전할 나의 화두. 나이듦 그리고 죽음. 2018. 12.31.
너 없는 동안 ​​​ 어린이집 졸업여행 떠난 루다가 없는 동안 지금의 버티는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버티는 일에는 재미가 없다. 라는 결론을 내려다가 먹고 사는 일에 재미라니 어처구니 없는 낭만주의자 같아 자기 검열에 든다. 결국 나에게 재미란 매일을 사는 동력의 전부나 다름 없어 버티는 일을 그만 두거나 버티는 일에 상위 프레임의 의미를 붙여 주자고 합의 하였다. 아 , 합의 인지 비겁한 변명인지 둘 다 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내 사랑 루다가 없는 동안 덕분에 잠시 몸도 기분도 내려 앉았다. 네가 돌아오면 네 미소는 나의 여러 고민을 무찌를테니 이 또한 지나가겠지 한다. 그러니까 네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에세이라는 막막함 에세이, 수필의 다른 말. 수필,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오래오래 전부터 꾸준히 여행 에세이를 챙겨 읽은 독자로서 어떤 에세이를 좋은 에세이라 부르냐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앞에서 막막하다. 이제껏 여행하는 것에 아깜이 없었고, 여행할 때면 어김없이 한 손엔 여행 에세이를 챙긴 독자로 어려운 질문도 아닐텐데... 이토록 막막하다니.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를 떠올려 본다. 여행지에서의 말랑말랑한 감성만을 풀어 놓은 책에는 사실 별 흥미가 없다. 여행지에 대한 배경 지식과 문화, 현재의 도시 풍경과 로컬들의 사는 모습을 꿰뚫는 통찰력을 가졌을 때야 만족한다. 스스로의 감상 또한 일차원 적인 느낌에 한하기보다, 내면 깊숙이..
키우기 쉬운 자식이 있을까마는 ... ​ 키우기 쉬운 자식이 있을까마는 아들 너는 어렵다. 아침부터 눈물 훌쩍이며 전화가 왔다. 엄마.. 흑흑 엄마... 흑흑 응 한젤아 왜? 말해봐 왜? 무슨일 있어? 만원 지하철 안에서 최대한 상냥하고 부드럽게 대꾸했지만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계속 흐느끼기만 하길래 "한젤아 엄마가 일찍 갈게, 알았지?" 하고 끊고는 다시 출근길 긴장 모드로 전환했지만 당연히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른 출근 중이니 30분이라도 이른 퇴근을 제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단축 근무 중이라 눈치가 보이겠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어젯밤 일이 걸렸다. 아들 마음에 여진이 남았나 싶어 걱정이었다. 어젯밤 한젤의 폭풍 오열을 보았다. 발단은 준비물을 못 챙긴 한젤을 여자 아이 둘이 수업 과정에서 따돌린 모양이었..
집 짓는 일 #1 건축가와 건축주 instagram @australian architecture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이따 뵐게요. ... 고맙습니다. ... 벌써 너무 많은 인사말이 씹혔다. 이런 일방적인 관계는 짝사랑도 드믄 내게 첫 경험이나 마찬가지라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당황스럽다. 회사 동료라거나 거래처 누구라거나 옆집 아줌마라면 애써 무시하고 적당히 거리 두며 살다보면 잊혀질 터. 억 단위의 프로젝트, 그 중 반은 빚인 가슴이 답답한 일생 일대의 결정에 그 누구보다 중요한 키를 쥔 사람. 남은 인생의 흥망을 손에 쥔 자, 나의 건축가 얘기다. 바보같은 솔 메이트가 되리란 꿈도 거품이 되었다. 나의 가장 큰 문제가 '기대감' 이란 걸 잘 알지만, 기대가 이만큼 흩어져 파편으로 사라진 경우는.... 이 얼마나 불운인가...